전주뿐 아니라 호남엔 없는 것들이 많다. 재계 서열 상위의 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복합 대형 쇼핑몰을 포함한 여가생활을 즐길 만한 인프라도 부족하다. 코스트코를 지난해 말 전북 익산시가 호남에서 처음으로 유치했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다. 운전면허시험을 보기 위해 26년간 나주시까지 다녀야 했던 광주 시민들의 불편도 그나마 내년 말 들어서는 광주운전면허시험장 건립에 한시름을 놓았다.
행정구역상 호남은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일대를 통칭하는 지명으로 면적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2만934.7㎢다. 한 나라와 견주는 면적에도 불구하고 없는게 많다보니 ‘호남 엑소더스’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을 보면 호남의 낙후된 현실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데이처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전체 지역경제 GRDP는 1.9%로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전년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0%대를 벗어났다. 하지만 권역별로 보면 호남권만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1.2%)을 기록했으며 호남 내에서도 전남은 -3.6%로 떨어졌다. 전남의 하락폭은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호남 개발 공약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지역 경제를 떠받칠 만한 대기업과 기반 산업이 없어서다. 문제는 공약만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호남 부흥의 카드로 떠오른 ‘새만금’이 대표적이다. 새만금은 1991년 방조제 착공 이후 35년간 15조원을 쓰고도 매립률은 40% 수준에 그치면서 아직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새만금공항은 아직도 착공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호남 카지노 발언은 다시 새만금 카지노 도입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현재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제주 8곳, 서울 3곳, 부산 3곳, 인천·대구 각 1곳 등 16곳으로, 호남엔 한 곳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시민단체 반대도 걸림돌이지만 국회 입법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지사 출마를 선언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삼성전자의 전북 이전’ 주장을 내놓았고 이에 맞장구를 친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유치 추진위원회’는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이 대통령에 이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반도체 클러스터의 호남 이전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내놓았으니 추진동력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태양광 0.3GW(기가와트) 수준에 불과한 새만금의 현 발전량과 인근 지역 등 현지 댐의 여유물량이 2만t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 8일 청와대는 여권 일각의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 주장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지방선거 전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한 현재, 호남을 포함한 지역균형 발전은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다. 다만 중장기 플랜 없이 무턱대고 당장 추진하자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정황상 지방선거와 맞물린 새만금 개발 카드는 정치적 활용 수단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오랜 희망고문에 시달린 호남이 이런 장밋빛 선전에 들썩일지도 의문이다. 설사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덩그러니 공장만 있으면 누가 오겠는가. 교육, 의료, 문화, 주거 등 ‘사람이 살 만한’ 정주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호남의 발전 계획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