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현재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한국형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 제도다. 이는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산업 구조와 소송 환경에 맞게 법원이 전문가를 통해 사실조사를 수행하고 기술 침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한국형 증거조사’ 체계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는 기술 분쟁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제도적 해법이다. 기술 침해 사건에서는 침해 여부를 가르는 핵심 정보가 설계도, 소스코드, 공정 데이터, 내부 기술 문서 등 상대방의 관리 영역에 집중돼 있다. 전문가에 의한 사실조사는 기술 구성요소의 대응 관계, 실시 제품의 기술적 특징, 침해 여부에 대한 기술적 판단을 통해 쟁점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보조하는 절차이자 분쟁의 방향을 조기에 설정해 소송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제도의 신뢰와 안착을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수적이다.
첫째, 변리사의 비밀유지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 ACP)이 보장돼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변리사와 의뢰인 간에 오간 권리범위 해석, 실시 형태 분석, 선행기술 대비 의견 등 법률·기술 자문 자료가 무분별하게 공개된다면 이는 방어권 침해이자 또 다른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현재 국회에는 전문가 사실조사 과정에서 변리사와 의뢰인 간 법률자문 자료를 원칙적으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이는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보호와 균형을 동시에 고려한 중요한 입법적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변리사·변호사 공동소송대리다. 특허 침해소송은 법률분쟁이자 고도의 기술분쟁이다. 증거 조사단계에서는 기술사실 판단이 선행되지 않으면 법률적 주장 역시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자료 선별, 현장 조사, 증인 신문 과정에서 변리사와 변호사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공동소송대리 구조는 기술 분쟁을 형식이 아닌 실질로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모델이다.
물론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무분별한 조사 신청으로 영업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조사 대상과 범위는 법원이 엄격히 특정하고 비밀유지명령 위반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안전장치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특허법 개정 논의에서도 중요한 전제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는 어느 한 직역의 이해관계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기술주권을 지키고 공정한 시장 질서 속에서 혁신의 성과가 보호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기술과 법을 함께 이해하는 전문가가 제도의 중심에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할 때 한국형 디스커버리는 기술 분쟁의 해법을 새롭게 설계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기술 혁신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제도의 설계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형 디스커버리는 그 방향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