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자극적인 사건 사고 뉴스에만 노출되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은 세상을 실제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적대적인 곳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평균 세상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을 유발한다. 우리는 정보를 소비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공포와 불안의 틀 속에 갇히고 있는 것이다.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편향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적 재앙으로 치닫기도 한다. 최근 미국 등지에서 발생한 증오 범죄 사례들은 알고리즘이 어떻게 평범한 개인을 극단주의자로 변모시키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정 정치적 견해나 혐오가 담긴 영상을 접하는 순간 알고리즘은 유사한 논리의 영상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사용자를 고립된 커뮤니티로 안내한다. 단 몇 주 만에 세계관이 조작된 개인은 반대 의견을 ‘제거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망상적 정의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는 알고리즘이 한 개인의 사유를 장악했을 때 사회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경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알고리즘 저항권’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호주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금지법을 시행하며 보호에 나섰고 미국 상원에서는 알고리즘 추천 대신 시간순 정렬을 기본으로 제공하라는 법안이 힘을 얻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잘파세대(Zalpha·Z+알파세대)가 가장 먼저 이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주기적으로 시청 기록을 삭제하고 추천 피드를 초기화하는 ‘알고리즘 청소’(Algorithm Cleaning)를 일종의 루틴으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기계가 규정하는 ‘나’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유를 주체적으로 설정하겠다는 ‘디지털 주권 선언’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소개팅 상대의 SNS 추천 피드를 통해 가치관을 가늠하는 문화가 생긴 것도 알고리즘에 잠식된 사유는 매력이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키운만큼 ‘사유의 근육’을 회복하는 데 있다. 법적 제재는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 기술의 진화 속도를 앞지를 수는 없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삼키는 순간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생각 당하는 객체’로 전락한다. 진정한 사유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의견과 마주하고 의도적으로 낯선 정보에 자신을 노출하는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의 미로 밖으로 걸어 나와야 한다. 가끔은 검색 기록을 과감히 지우고 내가 한 번도 클릭해 보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펼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존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