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집합건물 관리단이 특정 구분소유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필요한 서면 결의의 정족수를 산정할 때 매우 중요한 법리적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5. 11. 20. 선고 2025다211190 판결). 이 판결과 그 근거가 된 기존 법리들을 바탕으로, 집합건물 관리단이 분쟁을 해결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의결권 산정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나노바나나)
문제는 소송을 당할 당사자(피고)가 해당 건물의 구분소유자로서 상당한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다. 자신이 당사자인 소송에 찬성할 피고는 없다. 만약 피고의 지분을 전체 정족수에 포함한다면, 피고는 자신의 의결권을 방패 삼아 관리단의 소송 제기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은 이 문제의 해답을 사단법인의 원칙에서 찾았다. 비법인사단인 관리단의 결의에는 법인격을 전제로 하는 규정을 제외하고 민법의 사단법인 규정이 유추적용된다. 그중 핵심은 민법 제74조다. 이 조항은 사단법인과 어느 사원과의 관계사항을 의결하는 경우 그 사원은 의결권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거 종중 총회 분쟁에서 대법원은 이 원칙을 명확히 한 바 있다(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2다38216 판결). 종중과 특정 종원 사이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사항(예: 종원에 대한 채무 감경이나 소송 제기 등)을 의결할 때, 해당 종원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나아가 결의 성립에 필요한 의결정족수 산정의 기초가 되는 종원의 총수(분모)에서도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결(2025다211190)은 위 법리를 집합건물 관리비 분쟁에 구체적으로 대입했다. 이 사건 건물은 11개의 호실을 10명의 구분소유자가 나누어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중 2개 호실을 소유한 구분소유자(피고)가 적법한 자격 없이 관리업무를 수행하며 관리비를 챙겼다. 관리단은 피고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구분소유자들로부터 소 제기 추인 동의서를 받았다.
원심(제2심)은 전체 10명의 소유자와 전체 면적(3,190.23㎡)을 기준으로 정족수를 계산했다. 피고의 지분을 분모에 포함하자 찬성 비율은 약 71.8%에 그쳤고, 결국 4분의 3(75%)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소송의 상대방으로서 관리단과 이익이 충돌하므로 의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전체 인원에서 피고 1명을 빼고(10명→9명), 전체 면적에서도 피고의 지분(602.94㎡)을 제외한 2,587.29㎡를 분모로 설정해 다시 계산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찬성 비율은 76.9%로 상승하여 소송은 적법한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
관리단이 소송을 위해 서면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또 다른 법리가 있다. 일단 서면에 의한 합의가 유효하게 성립하면, 구분소유자가 임의로 자신의 동의를 철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2021다252540)에 따르면, 서면 결의는 관리단집회의 결의로 의제되므로, 일단 합의가 이루어진 이상 새로운 결의나 서면 합의로 종전 내용을 변경하지 않는 한 개별적 철회는 효력이 없다. 이는 소송 과정에서 피고가 일부 소유자를 회유하거나 압박하여 소송 동의를 취소하게 함으로써 소송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법적 안전장치다.
이번 판결은 소수 혹은 대규모 지분권자가 자신의 의결권을 남용하여 관리단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행태에 쐐기를 박았다. 관리단은 소송 제기나 추인 절차를 밟을 때, 분쟁 상대방인 구분소유자의 지분을 제외한 정확한 실질 정족수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집합건물 관리 문화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바로 서기를 기대해 본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