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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가 나왔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최초로 형사사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판례가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심은 '직권이 없으니 남용할 권한도 없다'는 기존 대법원 논리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으나최근 2심은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에 관여해 재판이 신뢰받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렀다면 직권남용'이라며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2심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2심 재판부는 이같은 유죄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판결문에서 다섯 가지의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4-1부(부장판사 박혜선 오영상 임종효)는 지난달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박 전 처장의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는 1심과 같이 무죄가 선고됐다.
1심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근거로 든 판결은 지난 2022년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이다.
그는 2015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 도박죄 혐의로 기소된 프로야구 선수 관련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1, 2심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사법행정권자인 임 전 부장판사에게 다른 판사의 재판 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직권남용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후 다른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관련자 재판에서 같은 논리로 무죄가 속속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번 2심 재판부에서 이 논리가 뒤집어진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우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국고등손실)등 혐의 대법원 판례를 판결문에 인용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실무 담당자들에게 야당 정치인이나 민간인에 대한 사찰 및 보고, 견제·제압 방안 수립 및 실행 등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원심은 이같은 지시가 국정원 직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으므로 직권남용으로 인한 국정원법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21년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의 직권남용이란,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면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 2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 사건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정원 직원의 정치 관여 행위 금지가 법령상 명문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헌법과 법관윤리강령에 따라 제3자의 재판 관여 행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이 사건과 구조상 유사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시흥시 자치행정국장이 다른 부서 직원에게 승진 문제를 언급하며 허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신청을 허가하도록 한 사안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을 인정한 2004년 대법원 판례와 해군 법무실장이 국방부 검찰단에 향후 수사 방향 등 수사 기밀 사항에 대한 보고를 요구한 행위를 직권남용 유죄로 본 2011년 대법원판결도 인용했다.
도시개발사업단 택지개발과 팀장이 감독 대상 업체에 마치 불이익을 줄 것 같은 언동을 하면서 자신이 지정한 업체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한 행위를 유죄로 인정한 2012년 대법원판결, 시장이 건축 인허가 등을 지연시킬 듯한 태도를 보이며 관련 업체에 기부금을 납부하도록 한 행위를 유죄로 판단한 2007년 대법원 판례도 판결문에 넣었다.
그러면서 "앞서 본 대법원 판례 법리에 따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법상 재직 기간 산입 조항 사건 재판장에게 전화해 이미 결정이 돼 신청인에게 송달까지 마쳐진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 제청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단순 위헌 취지의 위헌 제청 결정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 재판장에게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 방법 및 자료를 검토하게 한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공모를 인정해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일, 박 전 처장은 전날(3일) 항소심 재판부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후 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 2026.1.3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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