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보고·지시 받았는데…'중처법 1호' 삼표 사망 무죄 왜?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10일, 오후 09:18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가운데)이 10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발생한 ‘중처법 1호 사망사고’와 관련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회장이 사고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이유로 중처법상 ‘경영책임자’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기업 집단 총수에게 중처법상 형사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를 둘러싼 법원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 재판부 “정도원 회장 중처법상 경영책임자 인정 어려워”

사고는 2022년 1월 29일 발생했다. 경기 양주시 은현면에 위치한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되며 작업자 3명이 매몰돼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이틀 만에 발생한 첫 사망 사고였다.

검찰은 삼표그룹 회장인 정도원 회장과 이종신 당시 삼표산업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특히 정 회장이 삼표그룹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실질적·최종적 권한을 행사하는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이영은 판사)은 10일 정 회장과 이 전 대표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도원 회장에 대한 판결에서 삼표그룹의 조직 규모와 지배 구조, 계열사 운영 방식을 핵심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단순히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사고 발생을 전후해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만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한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도원 회장이) 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이종신 당시 대표이사의 의무 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와 함게 경영책임자에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확보 △유해·위험 요인 개선 조치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재판부는 삼표그룹의 조직 구조상 안전보건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실행, 현장 관리에 관한 권한은 계열사 및 실무 조직에 분산돼 있는 만큼 정 회장이 해당 의무를 직접적·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사고 전·후 정 회장이 보고를 받고 일정한 지시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사업 전반을 총괄하며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룹 보고 체계내 정점에 있다는 것과 일반적인 경영 지시가 곧바로 중처법상 형사책임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정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경영책임자, 즉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 이종신 전 대표도 무죄…“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증명 부족”

이종신 전 삼표산업 대표이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전 대표가 당시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대표이사였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중처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만큼의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사고와 관련된 안전관리 체계의 미비나 현장 조치의 문제점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대표이사가 중대재해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며 “이 전 대표가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안전관리 실무가 본사 안전 담당 부서 및 현장 관리자 중심으로 운영된 점을 고려해, 대표이사의 형사책임을 인정하기에는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고 현장의 안전관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무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했다. 본사 안전 담당자와 현장 관계자들은 위험 요인에 대한 사전 점검과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등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인정돼 유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이들 실무자에 대해 “채석장 붕괴 위험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현장 안전관리 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사고 발생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분명히 드러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대기업 집단처럼 지배구조가 다층적인 경우, 최고 의사결정권자라는 이유만으로 중처법상 형사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으며,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에 대한 고의, 구체적 관여, 실질적 권한 행사와 사망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엄밀히 입증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로 평가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에 치우쳐 설계된, 입법 완성도가 낮은 법”이라며 “법리를 엄밀히 적용하면 대기업 대표나 회장의 무죄는 예정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다분히 현장 수준의 안전조치 실패로 발생한 사고를 대표·회장에게 묻는 것은 근대 형법이 배격하는 결과책임이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행 중처법은 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가 불명확해, 사건마다 재판부 판단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복불복’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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