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안 난다…수도권 집중으로 무너지는 계층 사다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11일, 오후 05:55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부모의 소득과 자산 수준은 물론 수도권 거주 여부 등이 자녀의 경제력을 좌우하는 세대간 부의 대물림이 최근 세대로 올수록 강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모가 부자이고 수도권에 사는 경우 자녀도 부유하게 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금수저’가 대세가 된 현실이 증명된 셈이다.

◇ 부모 소득·자산 물론 태어난 곳이 경제력 결정

한국은행이 11일 발표한 ‘BOK이슈노트: 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세대 간 소득백분위 기울기(RRS)는 0.25로 추정됐다. 부모의 소득 순위가 100명 가운데 10계단 오를 때 자녀의 소득 순위도 평균 2.5계단 함께 오르는 구조라는 의미다. 특히 1970년대생 자녀의 소득 RRS가 0.11이었던 데 비해 1980년대생은 0.32까지 높아져, 최근 세대로 갈수록 부모 소득이 자녀 소득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산을 기준으로 한 자산 RRS는 0.38로 소득(0.25)보다 높았고, 1970년대생 0.28에서 1980년대생 0.42로 상승해 자산 대물림이 소득보다 더 강하게 고착되고 있다는 평가다.

어디에서 태어났느냐도 경제력 대물림의 핵심축으로 지목됐다. 비수도권 소득 하위 50%인 가정에서 태어나 고향을 떠나지 않은 자녀는 10명 중 8명이 여전히 소득 하위 절반에 머물렀다. 이 비율은 과거(1971~1985년생) 50% 후반이었으나 최근(1986~1990년생)에 80%를 넘어섰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사업소득, 재산소득 등을 모두 합한 1인당 본원소득 격차는 2005년 연 320만원(2020년 가격 기준)에서 2023년 550만원으로 1.7배 확대됐다. 자산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가구 전체 자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주택의 경우 2005~2025년 사이 서울 아파트 실질 매매가격은 19.6%, 수도권은 15.4% 올랐지만 비수도권은 3% 하락해 격차가 벌어졌다.

지역 이동, 특히 수도권으로 이주를 통해 경제력 향상 등을 꾀할 수 있지만 비수도권, 저소득층 자녀들에게는 높은 집값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비수도권 부모 자산 하위 25% 자녀의 수도권 이주 확률은 상위 25% 자녀에 비해 43%포인트 낮은 것으로 추정됐다. 수도권 이주를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가 정작 저자산층보다는 고자산층 자녀에게 집중되는 ‘기회 불균등’ 구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약 절반은 태어난 시·도에서 계속 거주하고, 70%는 출생한 광역권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수도권 집중 완화하려면 교육·거점도시 중요”

연구진은 개인 차원의 합리적 선택이 국가 전체로는 구조적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는 계층 상향을 위해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수도권 출생 자녀는 계층 유지·상승을 위해 수도권 내 잔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청년층 인구의 수도권 쏠림 △비수도권 성장 잠재력 저하 △지역 간 양극화 △사회통합 저해 △초저출산 등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정민수 한은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출생 및 거주지역과 맞물려 경제력 대물림이 심화하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용이 될 재목이 강으로’ 가는 것을 돕는 이동성 강화와 더불어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방을 ‘작은 개천에서 큰 강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교육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정 팀장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비수도권 저소득층 학생의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시에 비수도권 거점대학에 대한 선택과 집중 투자를 통해 일부 대학이 특정 분야에서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준하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지역 내 인재 유출을 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비수도권의 산업기반과 일자리를 강화하는 거점도시 중심의 균형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와 재정 제약을 고려할 때 모든 지역을 균등하게 지원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는 한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로,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세대 간 소득·자산 이동성을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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