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꾸'가 뭐길래…볼펜 하나에 '영혼' 담는 1020[르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14일, 오전 10:31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이것도 예쁘다”, “너무 귀여워”, “아, 못 고르겠어~!”

지난 9일 오전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B동 부자재 상가. 여기저기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월요일 오전부터 종합시장을 점령한 이들은 ‘별다꾸’(별걸 다 꾸미는) 유행의 정점인 ‘볼꾸’(볼펜 꾸미기)에 푹 빠진 1020 세대다.

9일 오전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B동 부자재 상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 오른쪽은 기자가 직접 커스터마이징 한 볼펜. (사진=이유림 기자)
중학교 동창이라고 소개한 이 모(21)씨와 구 모(21)씨는 10년 우정을 기념하며 직접 고른 파츠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정 펜’을 만들었다. 이씨는 “우정 ‘볼꾸’ 하러 왔다”며 “보라색 계열로 맞췄다”고 말했다. 구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숏폼 콘텐츠에서 관련 영상을 본 후 궁금해서 찾아왔다”며 “볼펜을 단순히 ‘쓰는 도구’가 아니라 ‘만드는 놀이’로 즐긴다는 점이 신선하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진 모(9)씨는 진흙 속에서 진주를 캐는 것처럼 수십여 가지의 파츠 앞에서 신중하게 손길을 옮겼다. 진양의 어머니 김 모씨는 “아이들 사이에서 볼꾸가 유행이라고 해서 함꼐 와봤다”며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나이대가 되다보니 볼펜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꾸미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볼펜대가 500~1000원, 파츠 하나가 500~1000원대로 3000원이면 나만의 볼펜을 완성할 수 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B동 부자재 상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사진=이유림 기자)
볼꾸는 언뜻 쉬워 보이지만 막상 매대 앞에 서면 상당한 ‘설계 지능’을 요한다. 수십여 가지에 달하는 파츠 중 어떤 것을 중심으로 해야할 지, 캐릭터 모양과 색깔은 어떻게 맞출지 끊임없이 디자인을 그려봐야 해서다. 매대 곳곳에서 “생각보다 어렵네”라며 한참을 뒤적이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꾸미기에 영 소질이 없는 기자도 직접 ‘볼꾸’에 도전해봤다. 매대에 전시된 샘플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했는데도 나만의 볼펜을 완성하는 데 15분이 넘게 걸렸다.

이리저리 대보며 고민하는 기자에게 가게 주인은 “100~200원짜리 포인트 파츠 하나가 분위기를 바꾼다”며 “파츠 크기를 딱 맞추는 테트리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노하우를 전수했다. 또 다른 매대의 주인은 “볼꾸가 하도 인기가 많아서 우린 원래 비즈 장식만 하다가 최근 파츠를 들이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초기 나만의 꾸미기 문화는 완성된 제품 위에 ‘내 것’임을 표시하는 수준이었다. 제품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소심하게 변형을 주는 방식이다. 네임 스티커 인쇄가 대표적이다. 이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 처럼 화려한 마스킹 테이프나 실물 스티커 등을 활용한 꾸미기로 진화했다.

나만의 꾸미기 문화가 진화하면서 이제는 부품 단위부터 내가 골라 본체를 조립하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제품의 ‘뼈대’(바디)부터 ‘장식’(파츠)까지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는 식이다.

직장인 이모(31)씨가 커스터마이징한 휴대폰 케이스들(사진=독자 제공)
나만의 제품(커스터마이징)에 진심인 이들은 단순히 유행을 넘어서 ‘나를 기록하는 방식’이라고 언급했다.

커스터마이징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는 직장인 이 모(31)씨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게 ‘볼꾸’였다”며 “나라는 사람의 취향, 기질, 스토리가 담긴 것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가를 꾸미는 과정에서 작지만 소소한 성취감도 느끼고 그 결과물을 SNS에 올리면서 스스로의 자존감과 삶의 의미도 찾아갔던 것 같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장 농도 깊게 만들어주는 것이 커스터마이징의 진짜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