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덕 빅토리오 수사 선교 60년’ 영상 갈무리.(사진=연합뉴스)
고인은 건축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부산 대연동 성당과 부산 일광 공소, 대구 범어동 성당, 서울 한남동 피정의 집을 직접 지었다. ‘현장소장 신부’, ‘건설 현장을 누비는 이방인’으로 불렸다.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부천성모병원, 성가롤로병원을 지을 때는 현장 감독을 맡았다. 건축 현장에서 한국말을 배운 탓에 가끔 욕이 튀어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 온 직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알게 된 영화 감독의 권유로 1972년 영화 ‘정과 정 사이에’(감독 권영순)에 출연하는 등 한국 영화 여러편에 얼굴을 내밀었다. ‘정과 정 사이에’에선 ‘빅토리 디날도’, ‘고교 얄개’(1976)에선 ‘라 삐토리오’, ‘깨소금과 옥떨메’(1982)에선 ‘라 비또리오’ 등 출연한 영화마다 이름 표기가 제각각이었다.
영화 출연에 대해 ‘나승덕 빅토리오 수사 선교 60년’ 영상에서 “그 당시 외국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영화 제작할 때 외국 배우 찾다가 한국말도 하고 외국인이고 하니까 초청 받았죠. 재미로 많이 출연했지요”라고 설명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 16일 오전 9시30분, 장례미사 16일 오전 11시(한남동 국제성당), 장지 양평 꼰벤뚜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 관구 묘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