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패륜 상속인이라고요?"…달라진 민법에 '상속의 판' 바뀐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15일, 오전 06:32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A씨는 1살 때부터 형과 누나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버지 사망 직후 재혼해 연락 두절됐기 때문이다. 이후 A씨는 고모와 할머니 집 등을 오가며 형제들과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왔다. A씨가 50대가 됐을 무렵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할머니가 A씨의 보험금과 부동산 등에 상속권을 주장하며 나타났다. A씨에게 부모와 자녀가 없고 민법상 상속권이 형제보다 직계존속인 할머니가 우선해서다.

B씨는 부모님 이혼 후 줄곧 어머니와 살아왔다. 아버지와는 1년에 1~2번 연락하는 것이 전부였던 B씨는 성인이 돼서는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됐다. 외도와 도박을 일삼고 이혼 후 양육비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컸기 때문이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아버지와 달리 B씨는 어머니와 어려운 환경에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지병으로 숨지게 됐다.

법원 (사진=연합뉴스)
두 사례에서 A씨의 형제와 B씨는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A씨의 형제들은 유류분 반환 요청을 할 수 없게 됐고, B씨 역시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처지에 놓였다. 2024년 헌법재판소가 유류분 제도에 대해 일부 위헌과 헌법불합치 판단 내린 데 따라 국회가 최근 민법을 개정하면서다. 이에 가족사가 얽힌 상속 분쟁의 풍경이 달라질 전망이다.

국회는 지난 12일 민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크게 4가지 핵심 사안이 달라진다. △패륜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대상 범위 확대 △기여 상속인이 받은 보상적 증여 인정 △배우자의 대습상속 사유 조정 △유류분 반환 시 가액 반환 규정이다.

가장 큰 변화는 패륜 상속인의 상속권 상실 범위 확대다. 종전에는 미성년 자녀를 유기, 학대하는 등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어긴 ‘부모’에 대해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었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상속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이른바 ‘구하라 법’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부모뿐만 아니라 피상속인의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자녀와 배우자에게도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상당 기간 동거·간호 등으로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 유지·증가에 기여한 대가로 받은 증여·유증은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종전에는 특별한 기여로 받은 재산까지 유류분을 산정하는 기초재산으로 포함했다. 장기간 유기·학대 등 패륜적 행위를 한 상속인까지 일률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법 감정에 맞지 않고, 기여 상속인이 오히려 반환 부담을 지는 구조도 불합리하다는 헌법재판소의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상속 결격 판단을 받은 사람의 배우자가 대습 상속을 받는 것도 금지됐다. 유류분 반환 시 원물 반환이 원칙이던 것은 가액 반환으로 바뀌었다. 유류분 조정에 따라 이를 반환해야 되는 경우가 생겼을 때 여러 상속인이 이를 공유하고 있다면, 부동산·유품 등 원물 형태로 반환하는 것이 불필요한 분쟁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다.

이번 민법 개정안을 두고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열린 국회 법안소위원회 회의에서 ‘배드 파더스’를 언급하며 “반대로 부모가 나쁜 부모라 정작 내가 버렸던 애들한테 상속을 안 주려고 하는 경우도 구분해야 한다”며 “나쁜 자식이 아니라 버려진 자식과 버려진 형제 같은 경우에는 또 보호해야 될 게 있다”고 지적했다. 패륜 상속인 범위 확대의 입법 취지가 현장에서 잘못 나타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단 의견이다.

법조계는 판단 기준을 둘러싼 상속 분쟁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 변호사는 “상속권 결격사유 중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 등에 관한 판단은 법원의 판례로서 차차 형성될 것”이라며 “가족사는 무척 다양한데 이런 상황에 따른 판단이 매우 다양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부양의무 파기 여부, 기여도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달라는 분쟁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패륜상속인 상속권 상실은 2024년 4월 25일 이후, 기여도 인정 상속은 법 시행 이후부터 개시된 상속에 대해서 적용된다. 개정안은 정부 이송과 대통령 공포 절차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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