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 시선]국운 걸린 AI·반도체 인재 육성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20일, 오전 05:00

[이데일리 김영수 총괄에디터] 올해 초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2026학년도 수능을 치른 딸이 AI·반도체 관련 학과를 지원하려는데 어느 대학이 좋겠냐고 물었다. 이왕이면 기업과 연계된 계약학과가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게 좋겠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는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 판매 확대로 역대급 영업이익을 올린 SK하이닉스 계약학과는 어떨지 물었다. ‘의사 위에 SK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SK하이닉스의 올해 성과급이 ‘억대’라는 뉴스가 인상 깊었던 듯싶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부른 반도체 수퍼호황이 우리 대학 입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정시 모집에서 7개 대기업의 16개 계약학과 지원자는 총 2478명으로 지난해(1787명)보다 38.7% 늘어났다. 평균 경쟁률도 9.77대 1에서 12.77대 1로 올라갔다.

문제는 우리 인재들이 국내에 남아 있지 않고 해외로 나간다면 애써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유인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많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주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가겠다는 인재를 잡아둘 순 없어서다.

2024년부터 향후 10년간 3000억 대만달러(약 14조원)를 투입해 정부·대학·기업이 함께 AI와 반도체 융합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한 대만 정부도 고민이 깊다.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TSMC 이사회가 지난해 2월 승인한 대만 지역 직원 대상 성과급 및 상여금 총액은 1405억 9000만 대만달러(약 6조 5200억원)로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심각한 저출생에 직면하면서 자체 인력 수급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TSMC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로봇·서버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고 나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역시 지난 17일(현지 시간) 개인 X(옛 트위터) 계정에 “한국에 있는 AI 반도체 설계·생산·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테슬라에서 함께 일하자”라며 공개 채용 공고를 올렸다. 전문인력이 풍부한 우리 인재를 채용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2031년 반도체 산업현장에서 부족한 인력은 5만4000명에 달할 전망인데 더 많은 인력 유출 가능성에 비상이 걸렸다고 볼 수 있다.

우수 인재를 국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뿐 아니라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연속성 있는 정책이 지속돼야 한다. 현 정부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올해 4분기에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인데 특위 내 ‘AI·반도체 인재 육성’ 전담 부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특위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산업계뿐 아니라 학계 인사도 위원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산업·교육 현장에서 직면한 과제를 중심으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미래국가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안민석 경기미래교육자치포럼 대표(전 국회의원)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 또한 교육정책이며 정치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AI·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핵심 해법으로 ‘교육’을 제시하며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주길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는 20개가 넘는 AI 관련 법안들이 대부분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이 법안들 중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의원 시절인 지난해 5월 AI 산업 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대표 발의한 ‘AI 산업 인재 육성에 관한 특별법’도 포함돼 있다. AI·반도체 인재 육성 정책에 국운이 걸린 만큼 교육·산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국회가 집단지성을 결집해 ‘백년지대계’ 설계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달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 현장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엔비디아, 인텔 등 국내외 약 550개 반도체 기업이 참여했으며 부스는 2409개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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