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는 로봇이 아니라 질문이다[김덕호의 갈등사회]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23일, 오전 05:15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로봇이 공장을 걸어 다닌다. 사람처럼 걷고 손가락으로 집고 생산라인을 오간다. 인간보다 빠르게 학습한다.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다. 이미 예정된 현실이다. 현대차가 선보인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이야기다.

아틀라스는 단순 작업에 먼저 투입된 뒤 머지않아 정밀 공정까지 맡게 된다. 신입사원이 수습을 거쳐 핵심 업무를 맡는 경로와 닮아 있다. 기술은 이미 배치 단계로 들어섰다.

문제는 속도다. 인공지능(AI) 전환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피지컬 AI가 현실로 들어왔다. 이 변화 앞에서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일자리를 대체하느냐가 아니다. 전환의 비용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생산성이 커질수록 전환의 고통도 커진다.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의 보상 구조가 노동에서 자본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은 빠르게 늘어나지만 그것이 임금으로 이어지는 속도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AI는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다. 노동이 가져가던 보상을 자본으로 이동시킨다.

충격은 기술이 아니라 고용 구조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제 도구가 아니라 에이전트의 시대다. 계약을 검토하고 회계를 정리하는 AI 직원이 등장하며 일자리는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오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은 사람 대신 AI 구독료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사람 대신 AI를 고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노동시장의 규칙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AI는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하고 있다. 청년층이다.

생산성이 급등하며 경력직 한 명이 과거 여러 명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신입 채용이 빠르게 줄어든다. 기업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합리성이 모일수록 사회는 비합리로 기운다. 첫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는 계층 이동이 멈춘 사회다.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에게 공정은 현실이 될 수 없다.

AI는 사무실을 넘어 공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틀라스 한 대는 사실상 세 명의 교대 근무를 대체한다. 노동조합의 위기의식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AI는 글을 쓰는 수준을 넘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로봇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직무 전환 시나리오다. 누가 이동하고 어떤 교육과 보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설계다. 설계 없는 전환은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기술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투자를 줄이거나 생산 거점을 옮기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탈한국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키려 했던 기존 일자리뿐 아니라 미래의 일자리 기회까지 사라진다.

세계는 이미 인력 재편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 기업들은 반복 업무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AI와 로봇 분야 인재를 공격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해고 소식 속에서도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시장이 이를 위기가 아니라 효율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해고 대신 채용을 멈춘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가혹하다. 노동시장 밖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는 들어갈 문 자체가 닫힌다. 조용하지만 잔인한 구조조정이다.

한국 사회는 기술 속도에 비해 제도 준비가 느리다. 여전히 일자리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머물러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보호가 아니라 이동 능력에서 나온다. 감소할 일자리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새 직무로 이동할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AI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해야 할 일은 하나다. 파도를 막는 것이 아니라 누가 구명조끼를 입고 누가 배를 저을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노동시장을 보다 유연하게 설계해 이동을 촉진하고 안전망을 통해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결국 국가 경쟁력은 전환 능력에서 갈린다.

아틀라스는 로봇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갈등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사다리를 잃어버린 사회에 미래는 없다. 전환을 설계한 사회만이 미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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