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흔든 미·이란 긴장…맷 데이먼이 그린 석유정치 현실로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사회

뉴스1,

2026년 3월 07일, 오전 07:30

할리우드 영화 '시리아나' © 뉴스1

최근 한국 증시는 며칠간 롤러코스터를 탔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며 중동 긴장이 높아졌고, 이에 코스피와 코스닥이 크게 흔들렸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여러 종목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졌다. 반면 정유·에너지 관련 종목이 급등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금융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한 변수는 군사 충돌 자체가 아니라 석유였다. 국제 유가가 계속 출렁이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0달러 선을 넘나들며 상승 압력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담합 단속 등 강경 발언을 내놨지만 휘발유값은 계속 뛰고 있다.

세계 경제 구조는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망 위에 놓여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페르시아만 입구에 있는 좁은 바닷길,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에너지 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 수준이다. 해상 석유 무역 기준으로 보면 약 4분의 1이다.

액화천연가스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LNG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통로를 통과한다. 카타르가 수출하는 LNG 대부분이 이 경로를 이용한다. 특히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의 약 80% 이상이 중국·인도·일본·한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정부가 '탈탄소'를 외치며 기후위기에 대응한다지만, 여전히 기름의 중요성이 큰 것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시리아나'에는 중동 석유를 둘러싼 권력 정치가 등장한다. 맷 데이먼과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만 산유국에서 개혁을 추진하던 왕세자는 석유 수익을 교육과 산업에 투자하려 한다. 동시에 미국 석유 기업 대신 다른 국가와 에너지 협력을 추진한다. 그러자 그는 곧 위협이 되고, 왕세자는 미사일 공격으로 제거된다.

'권력 구조 장치'인 에너지 패권을 형해화하려고 했다는 협박이다. 작가 조승연 씨는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미국과 산유국(영화 속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지속해서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평하기도 했다.

영화는 허구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중동 정치와 에너지 산업, 국제 권력이 얽힌 질서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과 중동 사이 긴장 역시 결국 세계 에너지 공급망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 긴장 역시 이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이스라엘·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충돌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불안정해졌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은 군사 충돌 그 자체보다 에너지 공급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경로는 거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파이프라인이나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송유관이 일부 우회 수송을 가능하게 하지만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은 하루 약 350만 배럴 수준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약 2000만 배럴에 비하면 15% 정도에 불과하다.

즉 이 해협이 막힐 경우 세계 석유 공급의 상당 부분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유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구조는 기후 문제와도 연결된다.

세계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한 중동의 전쟁은 곧 세계 경제의 충격이 된다. 에너지 가격이 흔들리고 금융시장이 요동친다.

그리고 전쟁 자체도 기후 문제와 연결된다. 군사 충돌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석유 시설 파괴나 유전 화재는 환경 피해를 남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 유전 약 700곳이 불타면서 대기 중으로 막대한 오염 물질이 방출됐다. 사막 위로 치솟은 검은 연기는 몇 달 동안 꺼지지 않았다.

지금의 중동 긴장은 그런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석유 수급 문제는 이제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기후 위기다.

각국 정부는 전기차 보급과 히트펌프 확대, 재생에너지 투자 등을 통해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 긴장처럼 에너지 공급이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정치와 경제의 우선순위는 다시 에너지 가격 안정으로 이동한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할 경우 각국 정부는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에너지 가격 안정 정책을 우선한다. 전기차 보조금 축소나 탄소 가격 정책 완화 같은 조치가 논의되는 이유다. 화석연료 가격 충격이 커질수록 에너지 전환 정책은 단기적으로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에너지 시장 변동성을 키우며 에너지 전환 정책에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석유 가격 상승은 운송·산업 비용을 동시에 끌어올려 경기 둔화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중동의 군사 긴장은 단순히 유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방향까지 흔드는 변수인 것이다.

코스피의 급등락 뒤에는 결국 같은 질문이 남는다. 세계가 아직도 얼마나 석유에 묶여 있는가.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뉴스1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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