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생물법에 따라 어린이집으로 야생동물을 이동해 전시하는 것은 금지행위지만 불법 이동전시를 하는 업체가 성행하고 있다(어웨어 제공). © 뉴스1
야생동물을 자동판매기처럼 진열해 판매하거나 어린아이들이 동물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는 장면. 이 같은 체험이 과연 동물원이 수행해야 할 보전과 교육의 역할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동물원 체험 프로그램의 실태와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동물복지국회포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원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고 체험형 동물원 운영 실태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는 2023년 12월 시행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개정 이후 제도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개선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은 동물원 설립 제도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관람객이 동물에게 올라타거나 만지게 하거나 먹이를 주는 등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보유동물을 활용한 교육 계획'에 포함된 경우 만지기나 먹이주기 체험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어 법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원 21곳 중 20곳 먹이 판매…동물복지·공중 보건 우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조사한 동물체험 실태(어웨어 제공) © 뉴스1
이날 발제를 맡은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국내 체험형 동물원의 운영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체험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웨어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동물원 21곳 가운데 20곳에서 관람객에게 체험용 먹이를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15곳은 급여량이나 구매 횟수 제한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러한 환경에서 특정 개체가 먹이를 독점하거나 개체 간 경쟁과 공격성이 증가하는 등 동물 복지를 저해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조사 결과 단 한종에 대해서라도 보전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 곳은 3개소에 불과했다"며 "심지어 '희귀동물 사육 입문용 동물', '키우기 쉬운 동물'처럼 가정에서 야생동물 사육을 권장하는 설명을 하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물원 허가를 받지 않은 시설에서 포유류 야생동물을 전시하거나 체험 영업을 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업체는 미어캣을 판매용 개체로 포장해 사실상 전시·체험에 활용하며 규제를 피해 가고 있었다.
미어캣 등을 판매용으로 포장해 전시에 활용하는 모습(왼쪽)과 자동판매기처럼 야생동물 분양을 안내하는 모습(어웨어 제공) © 뉴스1
어린이집으로 야생동물 불법 이동전시를 하는 모습(어웨어 제공) © 뉴스1
또한 야생생물법에 따라 어린이집으로 야생동물을 이동해 전시하는 것은 금지행위다. 하지만 불법 이동전시를 하는 업체 12개소도 발견했다.
이형주 대표는 "매뉴얼 개정만으로 무분별한 체험 규제 어렵기에 법 개정 취지에 부합하도록 관람객 만지기, 먹이주기 등 전면 금지가 필요하다"며 "동물원 교육 프로그램의 재정의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동물복지 중심 관리 체계 구축"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영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실장은 향후 5년간 추진될 '제2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2026~2030)'의 주요 방향을 소개했다.
김 실장은 "이번 계획은 동물복지의 '확산'을 핵심 목표로 현장에서 실제 적용 가능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합계획에는 동물복지 프로그램 모범 사례 발굴과 확산, 동물원 종사자 실무 교육 강화, 생태교육 콘텐츠 개발 및 시민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이 포함됐다.
특히 보유 동물의 건강 상태와 복지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종별 데이터베이스(DB)와 전자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동물원 현장을 보면 행동풍부화나 긍정강화 훈련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교육과 물품 지원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동물복지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가제 정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폐업 동물원 문제에 대비해 거점 동물원을 중심으로 유기·방치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공공 수용 체계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물 체험 아닌 생태교육으로"…동물원 역할 재정립 논의
동물원 개선 논의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 및 토론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뉴스1
지정토론은 김규태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과거에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동물 복지 중심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면서 오히려 관람객이 증가했다"며 "동물 희생을 기반으로 한 체험이 아니라 생태 이해 중심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구조본부장은 동물원 허가제의 관리 체계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동물원 허가는 반복적인 행정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며 "허가권자가 민원이나 행정소송 부담을 느끼는 구조도 있어 허가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일하게 동물원 운영자 입장에서 토론에 참여한 남우성 강릉쌍둥이동물농장 대표는정책 논의 과정에서 동물원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남 대표는 "동물원 관련 규제가 빠르게 강화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운영해 온 민간 동물원들이 이를 단기간에 맞추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동물원 안전관리의 기본적인 매뉴얼조차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를 논의하기 이전에 최소한의 관리 기준부터 지켜지도록 해야 할 상황"이라며 "맹수 사고 대응 장비인 페퍼스프레이 같은 기본 안전 장비조차 준비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이 학대 수준의 환경에서 벗어나 최소한 안전하게 관리되는 것부터가 현재의 현실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재익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는 "동물 체험을 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영리 목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익준 법무법인 강남 전문위원은 "현행 제도에서도 교육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허가 취소 등 행정 조치가 가능하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 체계 강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경석 기후에너지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동물원 현장은 상시 모니터링이 쉽지 않은 구조"라며 "변칙 체험 프로그램이나 위법 상황을 보다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 광역 지자체 단위의 신고 콜센터 운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동물원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도 제기됐다. 한 공영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사육사는 "80여 종, 400여 마리를 사육사 13명이 관리하고 있다"며 "동물원 현장에서 안전과 동물복지를 위해서는 현실적인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으로 제도적 틀은 마련됐지만 동물원 동물의 복지 향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며 "동물원이 단순한 볼거리 공간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과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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