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통합돌봄지원법이 성공하려면

사회

이데일리,

2026년 3월 23일, 오전 05:52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 오는 27일 통합돌봄지원법(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된다. 정부는 이 법을 통해 의료·요양·돌봄·주거 서비스를 하나의 체계로 묶고 노인이 가능한 한 익숙한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시설 중심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에서의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전환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이 이제야 삶의 장소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이 생겼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과연 이 제도로 노인은 정말 ‘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통합돌봄지원법은 지자체가 중심이 돼 의료·요양·돌봄·주거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하고 개인별 돌봄 계획을 수립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도록 설계했다. 방문진료, 방문요양, 주거지원, 일상생활 지원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묶겠다는 구상이다. 제도 설계만 놓고 보면 한국형 커뮤니티케어의 법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노인의 삶은 행정체계 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삶은 병원과 약국, 식료품점, 이동수단, 이웃과의 관계, 위기 대응 체계가 촘촘히 연결된 생활권 속에서 작동한다. 집에 남는 것과 집에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통합돌봄이 지향하는 ‘지역에서의 삶’은 단순히 주소지가 집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일상이 끊어지지 않는 구조가 갖춰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많은 노인이 병원과 집 사이를 오간다. 한번의 작은 위기에도 장기 입원하거나 시설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돌봄 정책은 주로 서비스 ‘공급’에 집중해 왔다. 방문요양을 늘리고 시설을 확충하고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노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서비스의 개수가 아니라 접근성과 연결성이다. 필요한 순간에 실제로 닿을 수 있는가, 일상 속에서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 지점에서 지자체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법은 중앙정부가 만들지만 통합돌봄을 현실로 만드는 주체는 지역이다. 지역 병원과 재가서비스 기관, 주거 부서와 복지 부서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통합은 실체를 갖기도 하고 이름만 남기도 한다. 이제 지자체는 단순한 서비스 집행 기관이 아니라 의료·돌봄·주거·이동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설계하는 ‘지역 돌봄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통합돌봄은 예산의 문제가 없지 않지만 결국은 지역 거버넌스의 문제다. 일본은 이미 20년 넘게 초고령사회를 겪으며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운영해 왔다. 의료·돌봄·생활지원·주거를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묶고 케어매니저를 중심으로 개인별 돌봄 계획을 조정한다. 핵심은 서비스의 양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연결 구조다. 병원과 돌봄기관, 지자체가 정보를 공유하며 지역 단위에서 삶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한국이 참고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와 공간을 정비해도 결국 마지막을 책임지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통합돌봄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를 실행할 돌봄 인력이 필요하다. 지금 현장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높은 소진, 잦은 이직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돌봄 노동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전문성과 경력 경로가 보장되는 직업으로 재정의하지 않으면 통합돌봄의 지속 가능성은 요원하다.

주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 없는 노후 주택, 경사 많은 골목, 자동차 중심 도시 구조 속에서 “집에서 살라”는 말은 공허하다. 통합돌봄이 실질적 의미를 지니려면 노인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머물 수 있는 생활권 기반 주거 환경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돌봄은 서비스 이전에 공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합돌봄지원법은 분명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료·돌봄·주거·이동·관계가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작동하도록 도시 구조를 바꾸고 돌봄 인력을 지탱하는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노인은 시설이 아니라 동네에서, 관리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남을 수 있다.

초고령사회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노인을 어디에 머물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노인이 어떤 삶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던가. 통합돌봄의 성공 여부는 법의 완성도가 아니라 익숙한 동네에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노인이 집에 남는 사회가 아니라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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