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민의 동거동락] 우리도, 베토벤도, 평화를 원한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3월 24일, 오전 11:07

호르무즈 해협(사진=로이터)
[글=서형민 피아니스트] 우리가 악성(樂聖)이라고 부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인 루드비히 판 베토벤. 그의 여러 일화에서는 그가 꽤 괴팍한 성미를 갖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의 괴팍함은 청력 상실이 진행되며 더욱 심해졌다. 잦은 이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을 일삼곤 했다. 베토벤의 이런 기행은 1994년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메소드 연기의 대가인 개리 올드먼 (Gary Oldman) 의 연기로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은 그의 역작 제9번 교향곡 “합창”에서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를 인용하며 전 인류의 평화와 화합, 형제애를 노래했다. 이 교향곡의 4악장에서 그는 다소 단순한 멜로디를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아우르는 대규모 편성으로 발전시키는데, 이는 마치 ‘평화’라는 씨앗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듯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아쉽게도 현 인류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20세기에 수천만 명의 군인들과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러 차례 국지전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28일 미국의 기습 공습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최고위 각료 10명이 폭사했다. 이로부터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전 중동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고 말았다.

전쟁 발발 한 달간 뉴스 미디어를 수놓는 기사는 주로 현재 최고의 뜨거운 감자인 호르무즈 해협이다. 예로부터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인 호르무즈 해협은 인류가 석유를 쓰기 시작한 근대 사회부터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수출 항로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20~30%가 통과하는 좁은 바닷길인데, 이란은 전쟁 발발 후 이 해협을 봉쇄하며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가져온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유가 급등이다. 지난주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했는데, 며칠 전엔 배럴당 110달러 선까지 돌파하며 고유가 장기화의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기름은 현재 기계 장치의 절대다수의 동력원이다. 단순 석유에서 분별증류로 얻을 수 있는 제품만 해도 LPG, 휘발유, 등유, 경유, 아스팔트 등 다양하다. 이 석유의 글로벌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세계 경제가 입는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달러/원 환율이 1달러당 1500원대를 넘어서고 말았다. 석유뿐만 아니라 많은 제품이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환율 상승만으로도 큰 타격이다. 이렇듯 유가 급등은 일반 서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만큼, 온 미디어가 유가 급등에 집중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전쟁이 악영향을 끼치는 분야는 경제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나. 바로 생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행위로 인해 중동에서는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온통 유가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봐도, 미국-이란 전쟁 관련 보도의 열에 여덟 정도는 호르무즈 해협이나 유가 관련 경제 보도로 점철되어있고, 나머지 둘 정도만이 무고한 시민의 희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 UN이 미국ㆍ이스라엘 공습으로 170여 명의 초등학생과 교사가 희생된 사건에 대해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베토벤은 그의 합창 교향곡에서 “서로 껴안아라! 만인이여”라며,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노라”라고 노래했다. 젊은 나날에는 귀족들을 증오하고 민중파를 대놓고 지지했던 그도 말년에는 화합과 평화의 위대함을 노래한 것이다.

전 세계는 지금 끝없는 반목 중이다. 서로 본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는 점점 더 배타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마치 20세기를 집어삼켰던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반세기의 냉전이 모자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기름값 때문이 아니라, 무고한 생명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에.

◇ 서형민 피아니스트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우리의 현재와 관련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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