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복역 중이던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48)이 25일 한국으로 송환, 인천국제공항에서 이송되고 있다. 2026.3.25 © 뉴스1 안은나 기자
'동남아 3대 마약왕',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주범' 등 흉악범죄로 10년간 악명을 떨치고, 교도소 수감 중에도 여자친구를 불러 '황제 수감'을 즐겼다는 마약상 박왕열(48)은 누구일까.
범정부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태스크포스(TF)는 25일 오전 필리핀으로부터 박왕열의 신병을 인도받아 한국으로 송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필리핀 대통령에게 박 씨의 임시인도를 요청한 지 20일 만이다.
박왕열의 전과(前科)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필리핀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했고, 두 차례나 탈옥했다. 교도소 수감 중에도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로 활동하며 수백억 원대 마약을 한국에 밀반입·유통한 혐의도 있다.
사탕수수밭 살인 후 탈옥…사업가→범죄자 변신
박왕열은 원래 국내에서 수산물 수입유통회사를 운영하던 기업인이었다. 필리핀에서 공수해 온 생참치를 국내 백화점에 납품하고, 대전 등지에서 '참치 해체쇼'를 열며 언론 인터뷰까지 했다.
박왕열의 인생이 뒤틀린 것은 2010년대 초 사기를 당해 망하면서였다. 필리핀으로 건너간 박 씨는 사설 카지노와 불법 도박 사업을 운영했고, 2016년 10월 현지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하며 완전한 범죄자로 탈바꿈했다.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의 모티브가 됐던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이 박왕열의 범행이다.
박왕열은 한국에서 150억 원대 유사수신(투자 사기)을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박 모 씨, 심 모 씨, 맹 모 씨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겠다며 접근했다. 박왕열은 이들에게 카지노 사업 투자를 제의하며 7억 원을 챙기기도 했다.
위험한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투자 수익금 배분 문제로 다툼이 잦아지자, 박왕열은 2016년 10월 공범 김춘수와 함께 박 씨 등을 납치해 필리핀 팜팡가주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총을 쏴 살해했다. 박 씨 등이 은닉했던 100억 원여 자금도 가로챘다.
박왕열은 37일 만에 필리핀 당국에 검거돼 두 차례(2017년 3월·2019년 10월)나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번번이 탈옥했다. 두 번째 탈옥 땐 무려 1년간 도주 생활을 했다. 박왕열이 마약 유통에 손을 댄 시기도 이때였다.
필리핀에서 복역 중이던 이른바 ‘텔레그램 마약왕’ 박왕열(48)이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박씨는 필리핀 교도소 수감 중에도 텔레그램을 이용해 매달 300억 원대의 마약을 국내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6.3.25 © 뉴스1 안은나 기자
옥중 마약 유통·호화 생활…"증거 있냐" 조롱도
박왕열은 2020년 최종 검거돼 2022년 장기 징역 60년, 단기 징역 52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되려 수감 중에도 마약 제조·유통 행위를 활발히 하며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박왕열은 옥중에서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로 활동하며 한 달에만 60㎏, 약 300억 원 규모의 엑스터시, 케타민, 합성 대마 등 동남아산 마약류를 한국에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 마약은 국내 최대 규모 마약 공급책으로 불렸던 '바티칸 킹덤'에 흘러갔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가 투약한 마약도 '전세계'를 거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왕열을 필리핀 뉴빌리비드 교도소에서 '황제 수감' 생활을 즐겨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초 필리핀 국빈 방문에서 박왕열을 언급하며 "교도소에 수감 중이면서도 계속 텔레그램을 이용해 한국으로 마약을 수출하는 사람이 있다. 교도소로 애인을 불러 논다고 하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 법무부는 박왕열의 신병 인도를 수차례 요청했지만, 필리핀 정부가 송환을 보류하면서 애를 먹었다. 그 사이 박왕열은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마약을 팔았다는 증거가 있느냐", "내가 입을 열면 한국 검사들 중 옷 벗을 놈들 많다"고 수사기관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필리핀에서 복역 중이던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48)이 25일 한국으로 송환, 인천국제공항에서 호송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3.25 © 뉴스1 안은나 기자
李대통령 요청에 임시인도 물꼬…결국 법정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에게 박 씨의 임시인도를 요청하면서 '반전'의 물꼬가 터졌다.
사탕수수밭 살인사건 1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박왕열의 행색은 초라했다. 양손에 수갑을 차고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턱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박왕열은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로 이송돼 수사를 받게 된다. TF 소속 유승렬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은 "경찰은 피의자를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압송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경기북부청에서는 3개 경찰관서의 피의자 관련 마약 수사를 일체 병합해 집중적으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오늘 새벽 필리핀에 수감 중인 마약왕 '전세계'를 국내로 송환했다"며 "해외에 숨어있는 범죄자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dongchoi8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