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고문 기술자' 이근안 사망…"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만행"

사회

뉴스1,

2026년 3월 26일, 오후 07:12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이근안 전 경감. 2012.12.14 © 뉴스1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문한 혐의로 복역했던 이근안 전 경감이 최근 사망한 가운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가해자의 죽음으로도 만행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6일 성명을 통해 “이 전 경감은 과거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반인륜적 고문과 인권 침해를 가한 인물”이라며 “끝내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진 피해자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며 “오랜 세월 고통을 견뎌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께 깊은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문과 인권 유린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엄중히 새기고,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경감은 건강 악화로 최근까지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머물다 지난 25일 사망했다. 향년 88세. 빈소는 서울 동대문구 한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5시 20분 예정이다.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이 전 경감은 군사정권 시절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서 근무하며 대공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그는 남민전 사건(1979년), 전노련 사건(1981년),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 조작 사건(1985년), 반제동맹 사건(1986년) 등 사건 관련 피의자들을 고문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1985년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다.

이 전 경감은 이후 12년간 도피 생활을 하다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으며,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확정받았다. 여주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2006년 만기 출소했다.

그는 2013년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고백’이라는 책을 출간해 또 다른 간첩 조작 사건 가담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또 영화 '남영동 1985'에 나온 고문 장면이 실제와 달랐다고 주장했다. 다만 출간 기자회견 등에서 당시 고문 행위에 대해 “애국 행위인 줄 알고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legomast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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