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수출길 막힐라…환경규제 대응 위해 옷·타이어 등 5종 우선검토품목 지정[only 이데일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3월 31일, 오전 06:06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정부가 유럽연합(EU)의 제품·포장재 환경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형 에코디자인(K-ESPR)을 추진할 우선검토품목 5종을 지정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전기·전자 제품처럼 탄소배출과 수출량이 많은 산업이 포함돼 국내 산업계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유럽시장의 새로운 진입 허들 ‘에코디자인’…국내 수출 경쟁력에 직격타

30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K-ESPR 적용을 우선 검토할 품목으로 △섬유·의류 △철강·알루미늄 △전기·전자제품 △타이어 △녹색전환인프라(태양광 패널, 풍력블레이드, 에너지저저장장치 등) 등을 지정했다. 유럽의 환경규제에 앞서 국내 산업이 제품의 설계·생산 단계부터 환경 영향을 고려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규제를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기후부는 “EU의 ESPR 시행 일정에 따라 우리 기업의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품목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부차적으로 현 정부에서 대폭 보급될 예정인 녹색품목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EU는 2020년 ‘신순환경제계획’을 공개하면서 EU 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제품의 설계기준과 필요한 정보제공을 강제할 규정을 마련했다. 후속조치로 2024년에 도입한 에코디자인(ESPR)은 제품·포장재가 내구성과 재활용 용이성, 탄소배출량 등 16개 설계요구사항을 만족할 때만 상품을 EU 회원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제한다.

이 정책은 음식과 사료, 의약품, 동식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리적 제품과 부품·중간재에 적용되며 위임법에 따라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 재활용까지 전주기에 걸쳐서 환경영향을 줄이도록 요구한다. 이후 EU는 품목별로 위임법의 제정계획을 발표했으며 올해부터 그 품목별 채택이 하나씩 이뤄질 전망이다. 규제는 위임법의 채택일로부터 18개월 후 시행된다.

EU의 환경규제는 유럽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과 포장재에 적용되기 때문에 당장 국내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이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EU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 수출기업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예컨대 국내 수출기업은 품목별 세부 기준에 따라 일정 비율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하거나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을 바꿔서 수리와 재활용을 막는 요인을 줄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늘어나는 생산비용은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 국내 시장 충격 줄일 K-ESPR에 시동…“정책 전략부터 분명해야”

정부는 해외 규제에 대응하면서 국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시장에 맞는 제품의 설계 및 정보제공 기준을 설정할 계획이다.

산업계의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됨에 따라 민·관·학 참여에 기반한 상향식 제도운영이 필요하다는 게 기후부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기후부는 4월 이후 개방형 협의체인 에코디자인 포럼을 운영하면서 제도 설계를 위한 제도화 포럼과 품목별 대응 논의를 위한 각 품목별 포럼을 설치할 예정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EU에서도 품목별 규제기준과 규제강도를 정하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양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유럽 시장은 ‘브뤼셀 효과’(EU의 제도가 EU 밖에서도 글로벌 표준처럼 작동하는 현상)가 있어서 ESPR이 국제시장의 새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잠재적으로 모든 제품에 환경영향에 관한 모든 사항을 규제받을 수 있다. 사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상당한 부담 예상된다”며 “한국형 에코디자인제도로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기후부는 K-ESPR의 친환경 제품설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 발주를 준비중이다. 제도화·품목별 포럼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서 올해 연말까지 정책설계 법률안을 마련하고 이듬해에 EU의 작업 일정을 반영해 품목별 기준을 정리할 계획이다. EU의 ESPR 제도화가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K-ESPR은 2028년부터 각 품목마다 단계적으로 적용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K-ESPR 설계에서 속도보다 방향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호정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소장은 “EU의 에코디자인의 이면에는 자국 공급망에 대한 불안이 있다”며 “표면상 지구를 구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하지만 세부규정을 보면 EU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조치가 많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미중 등 주변국이 어떤 패러다임에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속에서 국내 산업을 고도화시킬 정책 철학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수기업은 에코디자인을 크게 고려하지 않겠지만 이 흐름은 시간차를 두고 내수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우리에게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분석하면서 하나씩 차근차근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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