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예로부터 길목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했다. 뭍에는 육로가 있고, 바다에는 해로가 있다. 언어학적으로 '길'은 소통과 단절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문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길을 막음으로써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흔히 육지의 길을 생각하지만, 바다에도 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좁은 길인 해협(海峽, 육지와 육지 사이에 끼어 있는 좁고 긴 바다)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목'이자, 적을 막아내는 '문장'(門障, 방어하는 길목)이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대만 해협의 긴장은 인류가 자원과 생존권을 두고 벌이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해협'으로까지 부른 호르무즈 해협. (뉴스1DB) © News1
언어적으로 '해협'은 '골짜기 협'(峽) 자를 쓴다. 산 사이의 좁은 골짜기가 강물을 가두듯, 바다의 골짜기는 국가의 운명을 가둘 수 있다. 여기서는 해협의 인문학적 의미를 짚어보고, 중국 역사 속에서 강과 바다의 길목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의 위기를 조망하고자 한다.
흐름을 통제하는 '병목'의 미학
해협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해협은 물리적으로는 좁은 수로에 불과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초크 포인트'(Choke Point), 즉 급소다. 급소는 '외부로부터의 타격에 극히 민감해 정도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는 부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부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경제적 의미로는 혈맥이라고 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처럼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수가 지나는 곳은 현대 문명의 '경동맥'이다. 이곳이 막히는 것은 유기체의 피가 돌지 않는 것과 같은 공포를 유발한다. 심리적으로는 경계를 짓는 의미가 있다.
한국어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해협은 '안'과 '밖'을 가르는 문턱이다. 이 문턱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교류의 서사가 우호적인 '무역'이 될지, 파괴적인 '전쟁'이 될지가 결정된다. 작금의 호르무즈 해협 사태가 무역보다는 전쟁으로 가고 있는 정황이 엿보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적벽(赤壁)에서 해협까지
중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물길'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메콩강을 둘러싼 물길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륙 국가였으나, 그 패권의 완성 뒤에는 항상 물길의 장악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강(江)은 오늘날의 해협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를 꼽으라면 대부분 적벽대전(赤壁大戰)을 말할 것이다. 적벽대전은 장강(長江)이라는 천연의 해협(사실은 엄청 넓은 강)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주유와 제갈량의 화공술로 무찌른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연합군의 승리가 아니라 거대한 장강이 만들어낸 천연의 방어선, 즉 '강의 해협'이 만들어낸 대서사시였다.
좁은 물길에서 대군을 무력화시킨 이 전쟁은 지형적 이점이 숫자의 우위를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오늘날 대만 해협을 둘러싼 대치 상황은 규모만 커졌을 뿐, 적벽에서 벌어졌던 '좁은 길목 지키기'의 현대적 변주곡이라도 할 수 있다.
구글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로 생성한 적벽대전 이미지. (필자 제공)
또한 명나라의 정화(鄭和) 함대와 믈라카 해협의 전투도 기억할 만하다. 명나라의 환관이자 장군이었던 정화는 영락제의 휘하에서 대함대를 이끌고 믈라카 해협을 장악했다. 7차의 원양 항해로 믈라카 해협을 장악해 동·서양의 통로를 손에 넣었다. 이는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물길의 독점권'이 곧 세계의 질서를 재편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사례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해양을 손안에 넣어 무역과 전쟁을 모두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내륙에서는 강물을 장악하는 나라가 세상을 지배했고, 바다에서는 해협(海峽)을 장악한 나라가 세계 경제를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현대에는 중국이 메콩강의 물길을 쥐고 있고, 호르무즈에서는 이란이 병권을 쥐고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세계 경제는 해협을 통해서 이뤄진다.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 또한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해협을 쥐고 있으면 세계 경제에 기여해야 하는 의무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소통의 언어로 여는 바닷길
국어학적으로 '봉쇄'(封鎖)는 입을 닫고 빗장을 거는 행위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억지로 막은 물길은 반드시 터지기 마련이며, 그 피해는 막는 자와 막히는 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바닷물은 늘 그 자리에서 그대로 흘러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이나 대만 해협의 긴장은 단순한 군사적 수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생존을 담보로 한 거대한 '언어적 불통'의 결과다.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말 길'을 틔우는 법을 가르치듯, 국제 사회 역시 해협을 '분쟁의 화약고'가 아닌 '공유의 광장'으로 인식하려는 인문학적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
해협을 지닌 자는 문명을 함께 이끌어 나아가는 주인공이 돼야 한다. 역사를 거스르고 자연을 거역하면 결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문명은 인간이 공유해야 하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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