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단순불복'은 불허…기본권 침해 명백성에 달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02일, 오전 05:52

[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제도 시행 첫 달에 접수된 사건 중 사전심사를 두 차례 열었지만 모두 각하처리했다. 3월 중 접수된 사건의 약 30%를 각하하면서 재판소원절차가 엄격히 진행된다는 것을 방증했다. 법조계에서는 비록 두 차례밖에 사전심사를 개최하지 않았지만 어떤 사건이 처음으로 전원재판부 판단을 받게 될지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재판소원 청구 이유·절차 모두 준수해야

1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정재판부는 지난달 24일과 31일 재판관 평의를 열고 재판소원 사건 총 74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12일 제도 시행 이후 30일 자정까지 접수된 256건 중 28.9%가 사전 심사 단계에서 걸러진 것으로 본안 심리에 회부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판결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투는 절차다. 헌재는 재판소원 사건이 접수되면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사전심사를 진행하며 여기서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되면 본안 심리 없이 각하한다. 헌재법상 청구 이후 30일 이내에 각하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자동으로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제도 시행 초기부터 지정재판부가 상당수의 사건들을 일찌감치 각하하면서 전원재판부에 회부될 ‘본안 1호’ 사건의 요건에 관심이 더욱 커진다. 헌재는 원래 의무 공시 대상이 아닌 지정재판부 결정문까지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향후 본안 회부 여부를 가를 실질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그만큼 엄중하게 사건을 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이기도 하다.

각하 사유별로 보면 헌재법상 명확한 절차 요건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확인된다. 청구 기간에 대해서는 ‘재판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라는 요건이 요구됐고,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한 보충성 원칙도 적용됐다.

상징적인 초기 접수 사건들도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판소원 ‘1호 접수’ 사건으로 알려진 시리아 국적 A씨의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 취소 사건은 청구기간 도과를 이유로 각하됐다. 난민 불인정 결정해 불복해 소송을 진행해온 A씨는 지난 1월 8일 대법원의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고, 재판소원 제도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달 12일 해당 사건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청구인은 청구 기간을 준수하지 못했고 기간을 넘겨 청구한 것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 개정 전 확정된 판결까지 소급해 구제하지 않겠다는 기준을 분명히 한 것이다.

‘2호 접수’ 사건인 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고(故) 김달수 씨 유족 사건은 보충성 원칙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다. 유족들은 형사보상 지연에 따른 국가배상 청구가 기각되자 재판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유족들이 “소액 사건이라 기대가능성이 없다”며 상고를 포기한 점을 문제 삼았다. 법원에서 할 수 있는 불복 절차를 끝까지 밟지 않았다면 헌재가 나설 수 없다는 취지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단순 재판결과 불복은 재판소원 대상 안돼

결국 본안 회부의 관건은 재판부의 재량이 개입되는 ‘청구 사유’ 요건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행법상 재판소원이 인정되려면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실제로 1차 심사 17건, 2차 심사 34건 등 가장 많은 사건이 바로 청구 사유 미비를 이유로 각하됐다.

청구 사유 조건으로 각하된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점은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재는 사실관계 확정이나 증거 평가의 당부를 다투는 것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확정된 재판의 취소를 구하는 청구인으로서는 헌재법상 각 사유를 갖췄는지에 대한 진지하고 충실한 주장·소명을 다 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장모를 폭행한 혐의(존속폭행)로 지난달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A씨가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낸 재판소원 사건에 대해 헌재는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과거 위헌 결정들을 나열하거나 아직 위헌 선언이 되지 않은 법령을 적용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없다며 각하했다.

전문가들은 재판소원의 성패가 결국 청구인이 주장하는 기본권 침해를 헌재가 제시한 청구 사유 범위 안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한 헌법소송 전문 변호사는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한 청구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선 명백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건들을 걸러낸 뒤 나머지 사건에 대해 지정재판부 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세 가지 청구 사유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치밀하게 입증해내야 사전심사라는 실질적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가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지정재판부 사전심사에서 총 74건의 청구 사건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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