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내신, 절대평가→상대평가 목소리 커져
대입 제도 개편안의 두 축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고교 내신 평가다. 현재 진보 진영에선 입시 경쟁 완화를 위해 이참에 수능·내신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수능과목 중 영어·한국사·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은 상대평가를 실시한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론의 핵심은 모든 영역을 절대평가로 바꾸자는 것으로 이는 사실상 대입 자격고사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11월 실시한 수능에서 난이도 논란이 불거진 이후 “향후 대입에서 내신·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능 문항도 선다형(객관식)이 아닌 논·서술형 문제를 출제해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을 함양하자고 제안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변별력 약화다. 최상위권인 의대에 갈 학생과 서울대 등 소위 명문대에 갈 학생,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갈 학생을 가려야 하는데 수능을 절대평가로 만들면 이런 변별이 불가능해진다는 논리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대학 수준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게 되면 대학은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변별할 수 없게 된다”며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 변별력이 약해지면 대학별고사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 자칫 1969년~1981년 사이에 시행된 예비고사·본고사 체제의 부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의 예비고사는 고교 교육을 입시 과목 위주의 암기식 교육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상위권 대학들이 성적 우수 학생 변별을 위해 본고사를 어렵게 출제하면서 과외 지도를 유행시켰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고교 내신 절대평가 전환 주장은 수능보다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작년 고1부터 시행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내신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게 타당하다는 논리가 있지만 부작용이 예상돼서다.
고교학점제는 적성·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이수해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2028년도 대입 개편 당시 내신 9등급제를 5등급제로 완화하는 대신 선택과목에서는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적성이 아닌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어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내신 절대평가 전환이 필요하지만 자율형사립고(자사고)·특수목적고(특목고)와 일반고 간 고교 서열화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강태훈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외고나 자사고 등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일반고는 황폐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통상 일반고보다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 자사고 외고의 지원율을 낮추는 요소였다면 절대평가 전환은 이를 일거에 해소할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위 내신 인플레이션 상황도 우려된다. 상대평가 방식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지 않아도 되니 시험 문제를 쉽게 내는 방식으로 점수를 높게 줄 가능성이 있어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많이 합격하는 것이 해당 고교 평판도에 영향을 미치기에 대부분의 고교에선 내신 부풀리기가 이뤄질 것”이라며 “결국 대학에선 고교 내신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수능 절대평가 전환 주장과 함께 거론되는 논·서술형 평가 도입론은 상대적으로 이견이 덜한 편이다. 인공지능(AI) 확산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고력·창의력 함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객관식 수능으로는 이런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점에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의 수능은 당초 의도와 달리 학생들의 문제 푸는 능력만 향상시키는 쪽으로 고착화됐다”며 “미래 사회에 더 중요해지는 분석력·비판력·창의력 등 고급 역량을 기르기 위해선 수능에서도 논·서술형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5년 1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를 찾은 학부모와 입시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 뉴시스)
전문가들은 AI 시대 전환에 따라 수능 개편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도입 취지를 잃고 상위권 변별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개혁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거센 국가에선 대입 제도가 초·중·고 교육을 좌우하기에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도 수능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수능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대학별 고사를 강화해 사교육 시장을 다시 키운다는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한다”면서도 “중요한 점은 발생 가능한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부작용 우려 때문에 현재의 수능방식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직과 교수는 수능을 이원화해 △자격시험에 가까운 절대평가 전환 △일부 과목 논·서술형 평가 도입을 주장했다. 수험생 선택에 따라 수능을 본 뒤 중위권 이하 대학은 대입 자격만을 판단하는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상위권 이상 대학은 논·서술형 과목까지 반영하자는 제안이다.
성 교수는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일부 과목은 논·서술형으로 출제하면 기존 선다형 시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들의 사고력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