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제발 살짝만” 주사실 안내문...성희롱 앞 속수무책 간호사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03일, 오후 09:22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여성 보건의료 인력의 인권 보호를 위한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한 병원 주사실에 붙은 ‘성희롱 경고문’이 씁쓸함을 안기고 있다.

최근 온라인을 달군 '주사실 예절' 안내문이다. 안내문에는 "바지는 가급적 주사 맞으실 족 골반 밑으로 살짝만 내려달라. 일부러 쭉 내려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간곡히 부탁 말씀드린다"고 쓰여있다. (사진=사회관계망서비스)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을 중심으로 스레드 이용자 A씨가 “경기도 한 이비인후과 주사실에서 목격했다”며 공개한 주사실 안내문이 확산했다.

A씨가 공유한 안내문 제목은 ‘주사실 예절’이다. 안내문에는 “바지는 가급적 주사 맞으실 족 골반 밑으로 살짝만 내려달라. 일부러 쭉 내려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간곡히 부탁 말씀드린다”고 쓰여있다.

이어 “저희가 여러 번 말씀드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쭉 내려 주시면 주사 놓기를 거부하겠다”고 경고했다.

또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발언은 되도록 삼가달라. 농담으로 던진 말 한마디로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며 “그냥 웃자고 농담으로 던진 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희는 매우 불쾌하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은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내, 딸, 엄마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문구로 불쾌하시고 언짢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이런 분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간곡히 부탁말씀드린다”고 덧붙였다.

안내문을 읽고 “내 눈을 의심했다”는 A씨는 “간호사님들한테 여쭤보니 ‘나이 든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하체를 다 벗고 간호사들 성희롱·성추행이 반복돼서 써놨다’고 (하더라)”라며 “나이 든 남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면 저렇게 공지까지…”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의 공지가 화제를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몇 번 이와 유사한 내용의 주사실 안내문이 공개돼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의 행태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다른 병원에 붙여진 안내문에는 “바지 내려 주는 건 서비스가 아닌가” “이왕 놔줄 거 아가씨가 놔주지” “아가씨가 내 엉덩이 만져(때려) 주는 건가?” 등 성희롱 예를 들며 “이 같은 발언을 할 경우 병원이 아닌 법원에서 뵐 수 있다”고 강력한 경고가 담기기도 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위한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2021년 비뇨기과 간호조무사 B씨도 KBS JOY 예능프로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많은 남성 환자가 ‘정액 검사 받으러 갈 건데 도와주냐’ 등 사실상 법적 처벌이 가능한 수위의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개인 메신저를 통해 자기 성기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낸 사람도 있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범인이 학생 신분이라 처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조차 “맨날 보시겠네요” “다른 남자들 것은 안 궁금하시겠네요”라고 해 주선자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여전히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4년 건양대 보건복지대학원 보건학과 이무식 교수팀(김진석)의 ‘국내 간호조무사의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의 16.8%가 최근 2년 이내에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대전시노동권익센터가 관내 간호조무사 실태조사를 한 결과 ‘환자 및 보호자를 응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언 경험’을 묻는 문항에 47.5%가 ‘그렇다’고 답했고,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 경험’에는 무려 19.3%가 ‘그렇다’고 답해 다른 감정노동 직군에 대비해도 매우 높은 수준의 결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외국은 여성 보건의료 인력 인권 보호에 적극적이다. 미국간호사협회는 ‘간호사 폭력 예방 모델법안’을 만들어 입법자들이 관련 법안을 만들 때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모델법안에는 ▲폭력이 빈번한 부서에 보안요원 배치 ▲의료기관 내 폭력 대응에 대한 명확한 절차 확립 ▲환자 의무기록에 폭력 전과 표시 등 폭력 예방 및 대응 시스템 구축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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