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까지 동났다…중동전쟁發 수급불안에 정부 사재기 단속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06일, 오후 05:27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서울 동대문구의 한 내과 의원은 최근 주사기를 구하지 못해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병원 원장은 “10cc 주사기를 많이 쓰는데 미리 확보하지 못했더니 도매상에서 전부 매진됐다는 답을 들었다”며 “당장 필요한 물량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주사기 등 의료 소모품이 시중에서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이 가격 상승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이른바 ‘사재기’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각각 의료기관과 주사기 제조사를 현장 방문하고 심평원은 사재기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하는 등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다만, 석유계 원료 공급 차질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수급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 치료재료 공급업체 안내문 중 일부(사진=인터넷 쇼핑몰 갈무리)
◇“원료 없는데”…사재기 겹치며 주사기 수급 비상

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병·의원에서는 주사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기존 공급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병원들이 평소보다 더 많은 물량을 요청하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가격 인상을 우려한 일부 의료기관들이 선제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해진 공급량 안에서 일부 의료기관이 더 많이 확보하면 다른 곳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단순한 수요 증가를 넘어 공급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사기 등 의료용 소모품은 대부분 석유화학 원료를 기반으로 생산한다.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가격 상승이 아니라 ‘원료를 제때 확보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이미 한계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한 주사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료 가격 급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지만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원료를 더 확보하고 싶어도 구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동발 리스크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 불안이 이어질 경우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원료 수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의료용 소모품 수급 불균형 역시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료를 구하지 못하면 생산 자체가 멈출 수 있다”며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6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 하우스 달개비에서 열린 중동전쟁 대응 제2차 보건의약단체 회의.(사진=보건복지부)
◇글로벌 의료 현장 ‘공급 쇼크’…정부·정치권, 해결책 마련 나서

이 같은 공급 불안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혈액투석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의료 튜브 부족으로 환자 치료 차질 우려가 제기됐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의료용 장갑 원료 수급 불안으로 글로벌 공급 차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대만 역시 원료 부족을 겪는 제조업체 지원을 위해 별도 대응 체계를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용 플라스틱 제품 공급망 전반에 걸친 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단기간 내 사태가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료 공급이 안정되거나 조달처 다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의료 현장의 공급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5일 논평에서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공급망 붕괴가 의료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며 “핵심 의료 소모품을 국가 필수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석유화학 원자재를 우선 공급하는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원가 급등으로 인한 생산 중단을 막기 위해 한시적 보조금이나 세제 지원 등 긴급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복지부는 이날 보건의약단체, 관계부처와 함께 ‘중동전쟁 대응 제2차 보건의약단체 회의’를 열고 의료제품 수급안정 협력 선언식을 진행했다. 이어 정은경 복지부장관은 오후 5시 서울 양천구 소재 투석 의료기관인 김성남 내과의원과 인근 목동정문약국을 방문해 중동전쟁에 따른 의약품·의료기기 수급 관련 현장의 의견을 청취했다. 오유경 식약처장 또한 같은 날 한국백신 안산공장을 방문해 주사기·주사침 제조업체 관계자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주사기와 수액세트 등 필수 의료제품을 ‘집중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생산·유통·수요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다. 의료기관과 관련 단체는 물량 선점이나 사재기 등 시장 교란 행위를 자제하고 안정적인 공급 유지에 협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고센터를 가동해 사재기를 차단하고 위반 행위가 확인될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의료제품의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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