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3.3’ 막으려다…‘을들의 전쟁’ 번지나[전문기자칼럼]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후 02:47

[김정민 이데일리 경제전문기자]뼈아픈 실패는 종종 선의에서 시작된다.

“정규직화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2년 미만 고용’을 강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계약직 직원이 2년 이상 근속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2007년 시행 이후 오히려 2년 미만 고용을 늘리고 임금 차별을 심화시켰다.

정부와 여당, 노동계가 손잡고 ‘근로자 추정제(근로기준법 개정안)’와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플랫폼 노동 등 기존 노동법 체계 밖에 놓여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취지만 놓고 보면 충분히 선하고, 필요하다.

세상의 저울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누군가가 얻는 만큼 누군가는 잃는다. 수천억, 수조원씩 이익을 내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에는 이 제도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있다. 비용이 늘어나도 버틸 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제로 인해 타격을 입는 이들은 따로 있다. 늘어날 인건비와 사회보험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영세 사업장과 소상공인들이다.

현장에서는 오랜 기간 3.3% 형태의 고용이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이 제도가 그런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만큼, 제도 변화의 충격 역시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닿을 수 밖에 없다.

4대 보험과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3.3% 형태의 고용에 의존해온 사업주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현실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이런 고용 관행이 일방적 강요가 아닌, 고용주와 피고용구간 합의와 동의 속에서 굳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일하는 사람도 마냥 끌려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본업이 따로 있어 부업이 드러나면 곤란한 사람, 여러 플랫폼과 일감을 오가며 소득을 맞춰야 하는 사람, 고정된 한 사업장에 묶이면 오히려 일거리를 잃는 사람에게 3.3%는 현실적인 선택지다.

부당해고와 임금체불,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추진한 입법이 정작 보호 대상이어야 할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이 선의의 실패다.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반대하는 소상공인 단체들조차 법의 취지와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법이 누군가의 사업장 문을 닫게 하고,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고,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근로자 추정제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사용자 부담이 1인당 월 42만1039원, 연 505만원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상공인 평균 연간 영업이익 2500만원의 20.2%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고·프리랜서 최대 870만명이 주 40시간 수준으로 편입하면 연간 추가 부담이 44조원에 이르고, 기업 소멸률이 0.5%포인트만 높아져도 3만8200개 기업과 6만1000명 일자리가 더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대치를 반영한 다소 과장된 수치기는 하지만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개정 법조항에 넣은 ‘분쟁이 발생할 경우’라는 단서 문구만으로 비켜갈 일이 아니다. 이 법이 현장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밀어낼지, 입법 전에 그 결과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이 충분히 숙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수혜 대상자와 노동계 인사 중심의 공청회, 간담회, 타운홀 미팅 몇 차례로 여론 수렴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정작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 다중 플랫폼 종사자, 투잡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되묻게 된다.

이대로라면 환부가 어디인지 정확히 진단하지도 않은 채 메스를 드는 수술과 다를 바 없다.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내놓을 ‘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노동법 체계의 큰 틀을 바꾸는 입법인 만큼, 속도보다 정확성이 앞서야 한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을을 위한 법이 또 다른 을을 좌절로 몰아넣는다면, 그 법의 존재 이유부터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3월 31일 열린 권리 밖 노동 보호를 위한 패키지 입법 간담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소상공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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