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낸 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이를 독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코로나19는 여전히 치명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50대 여성 환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코로나19를 앓은 뒤 한동안 호흡곤란과 소화불량으로 힘들어하다가 거주지 근처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심부전 진단을 받았다. 치료 과정에서는 뇌경색까지 발생해 마비 증상과 언어장애도 동반됐다.
보호자인 남편은 당시를 떠올리면 한 문장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 말은 보호자의 가슴 한켠에 깊게 박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문장이 되어 있었다.
이후 환자는 심장이식을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쳐 인천세종병원 응급실로 내원했고 곧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후 시행한 심초음파에서 좌심실 구혈률은 10% 남짓이었다.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더 이상 약물치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보았다. 즉시 심장이식 대기자로 등록하기로 결정했고, 동시에 좌심실보조장치(LVAD) 삽입 준비도 시작했다. 강심제 치료를 유지하면서 이식 관련 평가와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했고, 입원 한 달 열흘 무렵 LVAD 수술을 시행하게 되었다.
수술 후에는 기계 사용법, 수술 부위 소독, 일상생활 주의사항 등에 대한 교육이 이어졌다. 배우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보호자는 환자보다 더 열성적으로 설명을 들으려 했다.
“제 아내는 이런 거 설명해줘도 잘 이해를 못 해요. 기계도 잘 못 다뤄요. 제가 더 잘 아니까 제가 하면 됩니다. 소독도 제가 하고, 알람이 울리면 그것도 제가….”
그 절박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LVAD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환자 본인의 이해와 적응이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환자에게 직접 설명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교육 방향을 조정했다. 실제 교육은 이식 코디네이터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다. 전원 버튼 사용법부터 배터리 교체, 드레싱 방법, 부정맥 등 응급상황 대처까지 하나씩 반복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들어도 잘 모르겠다, 금방 잊어버린다”고 하던 환자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계 사용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대동맥판막역류 소견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심초음파 추적관찰에서 역류는 점차 진행하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와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았을 때, 더 지체하지 않고 가능한 한 빠르게 이식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좌심실을 도와주는 기계를 삽입했는데 왜 심장이 다시 나빠질까. LVAD 환자의 약 30~50%에서는 2년 이내 대동맥판막역류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술 전 경도의 역류가 있었던 경우 수술 후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 이유는 LVAD의 작동 원리에 있다. LVAD는 좌심실에서 혈액을 흡인해 대동맥으로 지속적으로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대동맥 압력은 높아지고 판막에는 지속적인 역압이 가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역류가 생기면 대동맥으로 나간 혈액이 다시 좌심실로 돌아오고, 다시 LVAD를 통해 대동맥으로 이동하는 비정상적인 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이른바 ‘recirculation loop’다.
이 경우 실제 전신으로 전달되는 혈류는 줄어들고, 좌심실 내 혈액 정체는 증가하며, 결국 폐울혈과 우심실 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복적인 폐부종과 호흡곤란이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LVAD 장비의 pump flow 수치는 겉으로 정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환자 상태는 악화되는 ‘숫자와 임상의 괴리’가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LVAD 속도 조절과 판막 개방 여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하지만, 궁극적인 치료는 심장이식이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의료진들과 상의하며 이식 시점을 준비하던 중, LVAD 수술 후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밤 10시쯤 뇌사 장기기증자 연락이 왔다. 당시만 해도 전체 대기 순번상 바로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기증자 상태를 간략히 검토한 뒤,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해 이식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산상으로 입력해 두었다.
이후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바뀌었다. 밤늦게 전달받은 내용을 확인해 보니, 15순위였던 우리 환자가 2순위로 올라와 있었고, 1순위 환자는 상태상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사실상 우리 환자가 가장 유력한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었다. 문제는 적출 장소가 부산이었고, 적출 예정 시간이 오전 9시라는 점이었다.
이 시점부터는 여러 축의 판단과 조율이 동시에 필요했다. 환자 상태와 이식 적합성을 다시 점검하며 수술 준비 방향을 정해야 했고, 적출 및 이식 일정이 실제로 가능한지 각 팀과 함께 판단해야 했다. 반면, 구체적인 이동과 연결, 항공편, 구급차, 연락 체계 정리는 이식 코디네이터의 몫이었다. 적출팀 출발 시간, 항공편 확보, 장기 운송, KONOS 관련 서류, 외부 기관 연락, 환자 입원 동선까지 실무 전반을 동시에 조율해야 했다.
새벽 비행기를 맞추려면 적출팀은 병원에서 새벽 5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남은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았다. 적출팀은 힘들다는 말보다 “가야죠”라는 말로 답했다. 그렇게 움직여주면, 이제 남은 쪽에서는 어떻게든 되게 만들어야 했다. 특히 장기를 담을 아이스박스를 동반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인 온라인 예매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항공사와의 직접 협의가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담당자와 연결하고, 새벽 시간대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가며 준비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렇게 밤새 긴박하게 움직이던 중, 뇌사 장기기증자의 뇌파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적출 일정이 이틀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오히려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셈이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시 설명하고, 다음 날 오후 재입원 일정으로 조정했다. 이후 남은 시간 동안 기증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항공편과 장기 운송 계획도 훨씬 안정적으로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적출 날짜는 이틀 뒤로 미뤄졌지만, 적출 시간은 그대로 오전 9시였다. 장기가 돌아오는 시간과 허혈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을지를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고, 수술팀 역시 같은 우려를 공유하고 있었다. 반면 이식 코디네이터는 적출팀이 무사히 출발한 이후부터는 돌아오는 항공편, 시간대별 예매, 구급차 섭외, KONOS 서류 준비, 장기 도착 후 병원 진입 동선까지를 실시간으로 재조정하고 있었다.
예상 대동맥 차단 시간에 맞춰 돌아오는 항공편을 여러 시간대로 미리 확보해 두고, 적출팀이 현장에 도착한 뒤 상황에 따라 가장 가능성 높은 항공편을 다시 골라 항공사와 구급차, KONOS와 연달아 연락했다. 병원 안에서는 적출팀과 수술팀, 중환자실, 보호자, 시설보안팀 사이를 연결했고, 병원 밖에서는 항공사, 적출기관, 사설구급차, KONOS와 끊임없이 소통했다.
이런 과정에서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능력만큼, 끝까지 부드럽게 협조를 구하고 매번 감사의 뜻을 전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결국 이식은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 주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식 당일, 적출팀은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부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 2시간 30분 만에 심장은 인천세종병원 수술실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허혈 시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회복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다음 날 아침,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환자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이것이었다.
“배고파요.”
LVAD 삽입 후 혈액순환이 개선되면서 식욕이 좋아져 체중이 10kg이나 늘었던 환자였다. 그래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벌써 배고프세요? 그래도 퇴원 전에는 살을 조금만 빼고 가십시다.”
새벽을 가로지르는 시간들 속에서 누군가는 생을 이어간다.
그 시간의 한가운데에는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의료진이 있고, 그 결정이 실제로 흔들림 없이 이어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정교하게 맞추는 이식 코디네이터가 있다. 심장이식은 한 사람의 손으로 완성되는 치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역할이 정확히 맞물릴 때, 비로소 한 생명이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