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윤 전남 낙안초등학교 교사
어릴 적 여행의 시작은 늘 버스 터미널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이어진 백화점 1층 공간을 지나며 맡던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는 낯설었지만 이내 '좋은 향기'로 기억됐다. 그러나 백화점 문을 나서면 전혀 다른 공기가 펼쳐졌다. 시장과 골목에서 맡게 되는 다양한 체취와 생활의 냄새는 때로 불쾌했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세계의 일부였다. 집으로 돌아와 옷에 밴 냄새를 털어내고 페브리즈를 뿌릴 때면, 냄새의 흔적은 지워지고 다시 '쾌적한 상태'로 돌아왔다.
오늘의 사회는 점점 더 '냄새'보다 '향'을 선호한다. 몸에서, 옷에서, 말에서, 태도에서 조금의 취(냄새)라도 느껴지면 무례하다고 여긴다. 반대로 향기롭고 정돈된 상태는 높이 평가된다. 또한 우리는 갈수록 매끄럽고 안전한 표현을 선호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러한 시대를 가장 온전하게 충족시키는 기술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장은 정중하고 논리적이며, 불필요한 감정과 모순이 제거된 상태로 제시된다. 사회가 요구해 온 '쾌적한 언어'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질문이 필요하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문장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사고의 흔들림과 망설임, 서툰 표현 속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성형 인공지능은 생각을 돕는 도구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표현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제거하는 장치가 될 위험도 함께 지닌다.
구글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필자 제공)
교육 현장도 이러한 긴장 위에 놓여 있다. 학교는 그동안 정확성, 논리성, 적절한 표현을 좋은 글의 기준으로 삼았다. 물론 이러한 기준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 강조될 때 학생들의 글은 비슷한 모양으로 정리되기 쉽다. 매끄럽고 정돈된 글은 늘지만, 자기만의 결, 망설임, 흔들림이 살아 있는 글은 줄어든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한다.
문제는 단순한 글쓰기 방식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고의 주체성과도 연결된다. 질문하고, 흔들리고, 다시 붙잡으며 생각을 만들어 가는 시간이 줄수록, 학습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 중심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윤리 교육은 단순한 사용 규범을 넘어서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편리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는 것만이 바람직한 사용인지, 혹은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남기는 과정이 왜 중요한지를 함께 묻는 방향이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제거하는 데만 쓰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 담긴 판단과 흔적을 드러내고 성찰하게 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매끄러움을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인간다움의 자리를 잠식하지 않도록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지 결과물의 완성도만 아니라 그 안에 한 사람의 고민과 선택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하는 점이다. 냄새를 지우는 시대일수록 교육은 지워진 자리의 의미를 되묻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인공지능 윤리 교육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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