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드라이브에 결여되는 법적 안정성[생생확대경]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13일, 오전 07:55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이 한 달이 지났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지만 산업계가 체감하는 현장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모양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3월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노봉법을 시행한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한 달 간 1011곳에 이르는 하청노조(지부·지회 포함)이 원청 사업장·기관 372곳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섭에 응한 곳은 33곳(교섭요구 사실 공고 기준)에 그쳤다. 노봉법은 원청 사업자가 근로계약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하청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교섭요구 의제 명시 근거 등 실질적 지배력 판단을 위한 구체적 규정이 부재하다보니 섣불리 교섭에 응하지 못하면서다.

법 규정이 모호하다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감지된다. 복수의 하청 노조가 하나의 원청 사업자를 상대로 ‘쪼개기 교섭’을 요구하면 실질적 지배력 판단을 받기 쉬운 ‘안전’ 의제를 내세운 뒤 개시 후 실질적 지배력이 없는 ‘임금’ 의제에 대해 교섭을 요구하는 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향후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 등 원청 사업자의 경영상 판단조차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가 직면할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관련 판례가 쌓이면 법 운용이 안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그 사이 혼란은 오롯이 산업계 몫이다. 다수의 산업재해 수사를 이끌었던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2021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5년여가 흐른 최근에서야 안정적 운용 기준이 될 판례가 쌓였다고 토로할 정도다. 노봉법으로 인해 산업계가 견뎌야 할 혼란의 시간도 꽤나 길어질 전망이다.

시선을 넓혀 보면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 노봉법처럼 산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규제법안뿐 아니라 안정적이고 빠르게 판례를 쌓아가야 할 법원을 뒤흔드는 사법개혁 법안마저 쏟아진 까닭이다.

판사의 판단에 압박을 가해 법 해석의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법왜곡죄’, 확정된 법원 판결이라도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을 시 헌법재판소가 이를 뒤집을 수 있도록 해 4심제 논란을 빚는 ‘재판소원’ 등이 있다. 인사노무 전문 한 변호사는 “노사 간 분쟁은 감정적 갈등을 기반으로 하는 데다 기본권으로 점철된 사안인 만큼 법왜곡죄, 재판소원 등 ‘끝까지 가보자’식 소송이 난무할 수 있다”고까지 우려했다.

이쯤되면 ‘법적 안정성’은 그야말로 실종 상태라 할 만 하다. 법적 안정성은 ‘정의’, ‘합목적성’과 더불어 법의 3대 이념으로 꼽힌다. 법은 일정하고 명확하게 유지해야 하며 개인은 자신의 행위가 어떤 법적효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법적 안정성의 핵심 가치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최근 입법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뿔만 아니라 시행된 법 규정 대부분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운용에 구멍이 다수 발견되는 경향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시선은 결국 ‘국회’로 향한다. 때마침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입법 활동에 분주한 국회다. ‘특정인·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가 법에 의해 질서있고 공평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법적 안정성을 부디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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