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직원 등이 오가고 있다.© 뉴스1 박정호 기자
10조 원대 전분당(전분 및 당류) 가격 담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업계 1·2위 최고경영진 신병 확보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윗선 수사'가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14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임 모 대상 대표이사에 대한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끝에 '소명 부족'을 이유로 검찰이 재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종전 구속영장 청구 기각 결정 후 추가로 수집, 제출된 자료를 종합해 봐도 피의자를 구속할 정도로 범죄 혐의에 대한 충분한 소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피의자가 혐의를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지난달 27일 임 대표와 이 모 사조CPK 대표, 김 모 대상 사업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같은달 31일 김 사업본부장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법원은 임 대표가 가격 담합에 가담했다는 소명이 부족하고 판단했다. 검찰이 열흘간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보강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음에도 똑같은 결과를 받아 든 셈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윗선 수사'가 사실상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재판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검찰이 경영진의 담합 관여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10조 원대 가격 담합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대상·사조 CPK·삼양·CJ제일제당 4개 업체 중에서 국내 전분당 시장 점유율 1·2위인 대상과 사조 CPK가 가격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보던 상황이었다.
담합 사건 수사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가격 담합은 당사자 간에 '가격을 올리자', '물량을 조절하자'고 합의한 증거가 있으면 돼서 (혐의 소명이) 유달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결국 검찰은 구속된 실무진부터 재판에 넘기고, 임 대표를 비롯한 나머지 업체 윗선 수사를 추가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구속된 대상 김 사업본부장의 구속 기한은 오는 19일까지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구속영장이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되면 수사팀 입장에선 타격이 크기 때문에, 재청구할 때 최대한의 보강 수사를 하기 마련"이라며 "(재청구까지 기각됐다면) 3차 청구는 예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 겸 제5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4.14 © 뉴스1 이재명 기자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청구 기각의 배경을 단순한 수사 역량 부족보다 구조적인 인력난에서 찾는 분위기다.
이재명 정부 들어 담합 사건 등 민생경제 범죄 수사에 고강도 드라이브가 걸리고 있지만 전국 검찰청에서 공정거래 범죄를 다루는 전담 부서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유일하고, 소속 검사는 6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앙지검 공조부는 지난 2월까지 밀가루와 설탕, 전력 분야에서 약 10조 원 규모의 담합에 가담한 업체 임직원 52명을 기소하는 등 성과를 내왔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검찰이 큰 성과를 냈다"고 격려한 바 있다.
하지만 공조부 검사 6명은 전분당 담합 사건의 추가 수사와 향후 공소 유지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유사 4곳의 유가 담합 의혹 사건까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등 수사가 한창 굴러가고 있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이에 따라 '공조 2부' 신설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도 최근 공조2부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과 법무부는 향후 형사소송법 개정과 보완수사권 조정 여부 등을 지켜보며 후속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공정거래조사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로 고발 사건이 우후죽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다층적 전문성을 요하는 사건이 많은 만큼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출신인 고원진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절 공조부에 12명의 부원(검사)을 두고 있었는데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공정위에 대응하는 공정거래수사청을 만들면 상징적 의미는 물론 공정거래 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dongchoi8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