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예고편'과 끝나지 않은 전쟁…갈등 속 '옳은 일'은 무엇인가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사회

뉴스1,

2026년 4월 18일, 오전 07:30

스파이크 리 감독의 1989년 영화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 뉴스1

최근 한낮 기온이 최고 30도에 육박하며 4월 초중순임에도 초여름 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평년을 웃도는 이상고온은, 아직 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가올 여름의 폭염을 예고케 한다.

무더운 날씨 속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중동 갈등으로 인한 긴장은 지속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 불안이 커지자, 단순한 체감 온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부담이 번지고 있다.

폭염과 갈등이 겹치는 이 장면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1989년 영화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연구소(AFI)와 영국방송공사(BBC)의 100대 영화에 꼽히기도 했다.

'블랙클랜스맨' '맬컴(말콤) X' 등을 연출하며 거장 반열에 오른 그의 출세작은 뉴욕 브루클린의 가장 더운 하루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폭염 속에서 쌓인 짜증과 분노, 인종 갈등이 결국 폭발하는 과정을 그렸다. 동네 피자가게를 둘러싼 사소한 갈등이 이어지던 끝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한 흑인 청년이 숨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분노한 주민들이 가게를 부수며 긴장은 폭발한다.

이 작품에서 더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사회적 긴장을 증폭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은유적으로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소수 집단 간 갈등을 끌어올려 결국 폭발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다.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는 이른 더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 고온은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사회가 가진 취약성을 먼저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냉방 여건이 부족한 저소득층, 야외 노동자, 노인 등 기후취약계층일수록 그 충격은 더 직접적이다.

여전히 '기후범죄'라는 유형이 법률상 명확히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기후와 기상 상황은 '더위' 그 자체를 넘어 인간의 삶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원장은 한국법학회에 낸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범죄에 대한 소고'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법적 책임 규정은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제기되는 피해'로 규정하며, 폭염과 질병, 자원 부족 등이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지난 6일 열린 국무회의 겸 제4차 비상경제 점검회의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기자

즉 더위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을 끌어올리는 '환경 변수'인 셈이다. 영화 속 갈등이 폭발하듯, 현실에서도 기후는 갈등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런 부담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냉방 비용 부담은 더 커졌고, 그 영향은 에너지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비슷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와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ESCAP)는 이번 중동 전쟁이 가장 먼저 피해를 준 곳이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이라고 지목했다. 이들 국가는 액화가스와 석유, 비료,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운임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물가와 재정, 일자리, 식량 안보가 동시에 흔들린다. 유엔은 이미 여러 나라가 연료 배급제와 원격회의 확대, 석탄 회귀 같은 비상조치에 나섰다고 전했다. 전쟁은 중동에서 벌어지지만, 그 여파는 가장 약한 곳부터 훑고 지나가는 셈이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도 1차 추가경정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확정된 6162억 원 규모의 재원을 바탕으로 대응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금융지원과 보급 확대뿐 아니라, 에너지바우처 예산을 102억 원 증액하고,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 사업을 128억 원어치 확대하는 등 전기요금과 연료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취약계층 보호를 강화하려는 조치다.

다만 이런 대응은 '완화'와 '극복'에 가깝다. 근본적으로는, 왜 이런 부담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지정학과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고 있고, 기후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질문은 영화 제목으로 돌아간다. '옳은 일'(right thing)은 무엇인가. 더위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는 선택인지, 아니면 구조를 바꾸는 선택인지에 대한 문제다. 이른 더위는 이미 시작됐고, 전쟁과 긴장도 끝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결국 취약한 쪽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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