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노바나나)
1심과 원심(전주지방법원 2022나6204)은 다소 우회적인 경로로 원고 청구를 인용했다. B와 C가 하나의 제사공동체를 이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승낙형이 아니라, 제3자에게 토지가 양도된 시점에 양도형 분묘기지권이 새로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구성이었다. 양도형은 성립 시점부터 당연히 지료가 발생하므로 청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원심은 부가적으로, 무상 약정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민법 제286조 지료증감청구권을 유추적용해 무상에서 유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건 분묘기지권을 승낙형으로 구성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원고의 지료 청구를 인정해 상고를 기각했다. 핵심 법리는 이렇다. 승낙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당시 지료에 관한 약정이 없거나 무상 약정이 성립했더라도 분묘 설치 당시의 인적 관계 변경, 사용기간, 지가·공과금의 상승, 토지 활용가치의 변화,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신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료를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원칙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사용대가를 청구할 수 있고, 분묘기지권자는 그때부터 객관적으로 상당한 지료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의 이유를 읽어보면 일리가 있다. 과거에는 임야의 경제적 가치가 낮았고 분묘설치자와 토지소유자의 관계가 종중·친척 등 우호관계였기에 무상 사용이 자연스러웠지만, 오늘날에는 택지·산업단지 개발로 임야의 가치가 크게 오르고,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묘 문화가 변하며, 토지 승계인과 분묘 관리자 사이 인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정변경 속에서 영구 무상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토지소유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희생시킨다는 판단이다. 이미 대법원은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에 관해 토지소유자가 청구한 날부터 지료를 인정하도록 입장을 변경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그 연장선에서 승낙형에까지 사정변경의 법리를 확장한 셈이다.
실무적 의의는 분명하다. 선대의 호의로 무상 사용을 허락받은 분묘가 자리한 토지를 승계한 매수인·상속인이라면, 이제는 민법 제286조의 지료증감청구 법리를 들어 적극적으로 지료를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만 이 사용대가는 무제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적 관계의 단절, 사용기간의 장기화, 지가 상승 등 구체적 사정변경 요소를 입증해야 ‘공평의 원칙상 타당한 경우’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반대로 분묘 관리 측은 조상 묘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가능한 한 조기에 명시적 약정이나 지료 정산 방식을 정비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습법상 물권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은 사회 변화에 맞춰 재조정된다는 점, 이번 판결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