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남자 환자입니다.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보던 환자인데, 호흡곤란이 계속 심해집니다. 이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전원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오후에 보내세요.”
확장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늘어나고 약해져서 심장이 몸으로 피를 충분히 밀어내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은 계속 뛰고 있어도 정작 필요한 만큼 보내지 못한다. 오래 쓰다 힘이 빠진 펌프처럼, 겉으로는 돌아가는 것 같아도 실제 기능은 점점 떨어진다. 젊은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젊어서 더 마음이 아프다.
평소 같으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음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손에서 휴대폰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오래 중증 심부전 환자를 보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생긴다. 수치보다 먼저, 말투보다 먼저, “이 환자 지금 상당히 위험하겠다”는 느낌이 번개처럼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나는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식사는 했나요?”
“며칠 전부터 잘 못했습니다.”
“오늘은 어땠습니까?”
“구역감이 있었고 많이 힘없어 보였습니다.”
“아침 혈액검사는요?”
“잠깐만요… 아, 간 수치가 많이 올랐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의 확신했다.
아, 이건 단순히 숨이 찬 환자가 아니구나. 이건 저심박출 상태. 심장이 피를 앞으로 밀어내지 못해서 장기들이 굶기 시작한 상태다.
심부전 환자가 갑자기 밥을 못 먹고, 메스껍고, 기운이 뚝 떨어지고, 간 수치가 오르는 것은 단순한 컨디션 저하가 아니다. 심장에서 충분한 혈액이 나오지 않으면 간, 신장, 장 같은 장기들이 제일 먼저 신호를 보낸다. 환자는 “숨이 차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때는 이미 몸 전체가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오자마자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에크모 준비를 하고 받겠습니다. 보호자에게도 꼭 설명해 주세요. 오는 중에라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외래를 시작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그 환자에게 가 있었다. 진료실 밖에는 환자들이 밀려 있었고,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그러나 내 귀에는 방금 들은 말만 계속 맴돌았다.
먹지 못한다. 구역이 있다. 힘이 없다. 간 수치가 오른다. 마지막까지 버티다 이제는 심장이, 온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왔다. 환자가 심정지를 일으켜 급하게 에크모를 삽입했다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에크모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오후에 꼭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마음 한편에서는 아주 냉정한 질문이 올라왔다. 의식은 어떤가. 이미 뇌 손상이 온 건 아닌가. 상태를 제대로 모르는데 이렇게 받는 것이 과연 맞나. 이런 환자를 무작정 받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환자는 너무 젊었고, 달리 방법도 없었다. 외래를 끝낸 뒤 심폐기팀과 함께 수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에크모 환자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 한 명을 구급차에 태우는 일이 아니다. 움직이는 중환자실을 통째로 옮기는 일이다. 회로가 빠지지 않아야 하고, 펌프가 멈추지 않아야 하고, 산소 공급이 유지되어야 하고, 약물이 이어져야 하고, 중간에 출혈이 생기면 즉시 대응해야 한다. 큰 앰뷸런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늘 제약 투성이다.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은 없고, 있다 해도 행정구역과 운영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사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시스템은 너무 자주 칸막이 안에서만 움직인다.
코디네이터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사설 앰뷸런스를 겨우 구하려 했지만, 인천에서 경기 지역으로 가는 데도 절차와 구역이 얽혀 한 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어느 구간은 어느 차량, 또 다른 구간은 다른 차량. 설명을 듣는 동안 화가 치밀었다. 이 환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서류상 경계가 아니라 단 하나, 무사히 살아서 도착하는 일이었다.
끝도 없던 오전 외래를 겨우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점심은 당연히 건너뛰었다. 차 안에서 허기를 느낄 틈도 없었다. 머릿속은 계속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도착하면 폐 상태는 어떨까, 신장은 얼마나 버텼을까, 출혈은 심할까, 이식을 기다릴 만큼 회복이 가능할까.
수원의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처음 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젊은 몸이었지만 이미 몸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체중이 10kg이 불어 있었다. 한 달 가까운 입원 동안 최근 일주일에만 10㎏이 더 늘었고, 원래 65㎏ 정도이던 청년은 95㎏ 가까이까지 부어 있었다. 살이 찐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감당하지 못한 물이 몸 안에 고여 있었다. 폐는 물에 잠긴 것처럼 부어 있었고, 소변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콩팥도 멈춰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크모를 유지하려면 피가 굳지 않도록 항응고제를 써야 하는데, 그러면 또 출혈이 생긴다. 코와 입, 관이 들어간 자리마다 피가 맺혀 있었다.
그 청년을 작은 앰뷸런스에 태워야 했다. 거대한 몸집, 에크모 장비, 약물, 흡인기, 함께 타야 하는 의료진. 공간은 턱없이 비좁았다. 차 안에서는 계속 suction 소리가 났다. 피와 분비물을 빨아내는 소리였다. 누군가는 모니터를 보고, 누군가는 회로를 지키고, 누군가는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에서 버텼다. 그날 우리가 세운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일단 이 청년을 살아 있는 채로 우리 병원 문턱 안까지 데려오자. 그 다음은 도착해서 생각하자.
보호자는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그러나 그 할머니조차 이미 넋이 반쯤 나가 계셨다. 예후가 좋지 않다고 설명드려도,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씀드려도, 그날의 할머니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 놀라고, 너무 지치고, 너무 두려우면 사람은 설명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만 듣게 된다. 의사는 그런 순간에도 설명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설명의 한계를 너무 잘 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팀이 움직였다. 폐를 보호하기 위해 심장 안의 압력을 덜어 주는 시술을 하고, 지속적 신대체요법, 즉 하루 종일 천천히 돌아가는 투석으로 넘치는 물과 노폐물을 빼내기 시작했다. 심장은 무너졌고, 폐와 콩팥까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한 장기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기 시작한 몸 전체를 붙들어 세우는 일이었다.
그 며칠은 참 길었다. 매일 아침 회진 때마다 폐가 조금이라도 펴졌는지, 소변이 한 방울이라도 더 나오는지, 의식이 돌아올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며칠 지나자 젖은 종이처럼 접혀 있던 폐가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고, 막혀 있던 소변도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의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기다림이었다. 젊은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였기에, 결국 살 길은 심장이식뿐이었다. 이식은 언제나 시간을 다투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치료는 아니다. 뇌사자의 심장이 있어야 하고, 환자가 그 심장을 받을 만큼 버텨줘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너무 늦으면 기회를 잡아도 수술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약 2주 뒤, 뇌사자 심장이 나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환자 상태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이식 후에도 며칠간 에크모를 더 써야 했다. 그래도 새 심장은 버텨 주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래도 분명하게 살아나는 느낌이 있었다. 결국 그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회복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살았다.
그런데 사람의 삶은 수술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심장이 회복되어도, 그 심장을 안고 살아갈 삶이 다시 문제로 남는다.
그 청년은 참 착한 환자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늘 불안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사가 복잡했고, 사실상 할머니가 엄마처럼 그를 돌보며 살아왔다. 가족 안에는 오래된 갈등과 불안, 충동이 뒤엉켜 있었다. 어렵게 이식을 받고 몸이 회복되어도 삶의 바닥이 흔들리면 약을 챙기고 외래를 지키고 일상을 지켜내는 일 자체가 힘겨워진다. 이식은 수술실에서 끝나는 치료가 아니다. 그 후의 삶 전체가 치료의 일부다.
그래도 그는 1년 남짓 꽤 잘 지냈다. 나는 그 시간이 고마웠다. 그런데 이식 후 1년 반쯤 지나면서 다시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정확한 원인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된 뒤부터였는지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몇 차례 거부반응이 있어 치료했지만, 그 뒤에는 조직검사에서 뚜렷한 거부반응이 보이지 않는데도 심장이 조금씩 굳어 갔다. 심근에 섬유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부드럽게 수축하고 이완해야 할 심장 근육이 점점 딱딱해지고 힘을 잃어 가는 것이다. 결국 심장이 짜내는 힘, 즉 심기능은 다시 10%대로 떨어졌다.
재이식을 고민해야 했다. 여기서부터는 의학 지식만으로 답할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된다. 재이식은 단지 수술을 한 번 더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뇌사자의 귀한 심장을 이 환자에게 다시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 심장이 이 몸 안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있는가, 이 청년은 앞으로 그 심장을 지켜 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의사는 환자를 살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주 냉정한 질문도 해야 한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흔들린다.
가족의 갈등은 여전했고, 환자도 우울과 자살 충동을 간간이 보였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무너진다. 숨쉬는 것조차 힘든데 어떻게 늘 차분하고 단정한 사람으로만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 당시의 나는 많이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포기해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아이에게 다시 한 번 심장을 맡기는 것이 맞을까.’
그 질문은 의사에게 참 잔인하다. 살리고 싶지만, 살린 뒤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무엇이 가장 옳은 일인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환자의 현재인가, 아니면 두려움인가. 의사인 나는 어디까지 냉정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다시 믿어야 하는가. 그래서 더 많이 기도했다. 무엇이 가장 옳은 일인지, 정말 환자를 위한 결정이 무엇인지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결국 환자는 다시 호흡곤란이 심해졌고, 두 번째로 에크모를 달게 되었다. 다시 이식을 기다리는 시간에 들어섰다. 그 시간이 약 2주쯤 지났을 때, 또 한 번 뇌사자 심장이 나왔다.
두 번째 이식 당일,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꼭 살려 달라”고 말했다. 그분은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을 거의 떠나지 못했다. 울다가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또 멍하니 앉아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잔인한 기대 위에 서 있는지 다시 느꼈다. 어떤 가족은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능성을 붙드는 사람일 뿐이다.
그날 나는 결국 이렇게 마음먹었다.
우선, 살려 보자. 살리고 나서, 그다음을 함께 감당해 보자. 모두가 힘을 합쳤고, 모두가 기도했다. 다행히 두 번째 이식도 성공적이었다. 환자는 잘 깨어났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지나며 한 가지를 더 깊이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환자에게서 쉽게 보는 예민함, 우울, 짜증, 충동 같은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아픈 몸’이 내는 목소리였을까. 몸이 오래 아프면 사람의 마음은 얇아지고, 작은 말에도 다치고, 사소한 일에도 무너진다. 어쩌면 환자가 힘들었던 만큼 마음도 같이 병들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일을 지나며 나는 다시 배웠다. 환자에게 더 가까이 가야 한다는 것. 심장초음파 수치와 혈액검사 결과만으로는 한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아픈 사람은 단지 치료받는 몸이 아니라, 두려움과 가난과 가족사와 외로움까지 통째로 끌고 병원에 온다는 것. 심부전은 심장 하나의 병이 아니라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병이라는 것.
확장성 심근병증은 젊다고 안전한 병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차고, 몸이 붓고, 밥맛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고, 소변이 줄어든다면 그것은 단지 피곤하다는 신호가 아닐 수 있다. 심장이 더는 몸 전체를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경고일 수 있다. 그 신호를 빨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도, 가족도, 의사도 그 경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그날 오전, 첫 전화를 끊고 다시 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짧은 몇 분의 직감과 질문이 결국 한 청년의 삶을 두 번이나 문턱에서 붙잡아 둔 것은 아니었을까.
의사는 매번 큰 결정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에 가깝다. 전화기 너머의 말투, “밥을 못 먹는다”는 한마디, 간 수치 하나, 보호자의 표정, 구급차 안의 suction 소리, 수술실 앞에 무릎 꿇은 할머니의 손. 그런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을 살린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완전히 확신하는 의사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환자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용기. 심부전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결국 그 두 가지를 놓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확장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약해지면서 심장이 커지고, 결국 피를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처음에는 쉽게 피곤하고 숨이 차는 정도로 시작할 수 있지만, 병이 진행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곤란이 생기고, 다리가 붓고, 누우면 숨이 차며, 식욕이 떨어지고, 소변량이 줄기도 한다.
특히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저심박출 상태가 오면 단순히 “숨이 차다”는 문제를 넘어 간과 신장 기능이 나빠지고, 구역감과 무기력, 심한 경우 쇼크와 심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젊은 환자라도 예외가 아니다.
치료는 약물치료부터 시작하지만, 병이 심해지면 제세동기, 심실보조장치, 에크모 같은 기계적 순환 보조가 필요할 수 있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심장이식이 유일한 치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숨이 갑자기 더 차다.
잘 먹지 못한다.
구역이 심하다.
몸이 붓고 소변이 준다.
기운이 뚝 떨어진다.
런 변화가 보이면 심부전이 갑자기 악화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