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무라벨 먹는샘물이 진열돼 있다.(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제도의 취지가 좋고 시장의 호응이 뒷받침된다고 해서 그 성과까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보여주는 불편한 전례가 소주병 공용화 협약이다. 2009년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소주 제조사들은 표준화한 녹색 소주병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병의 회수와 재사용을 늘리고 자원 낭비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2019년 하이트진로가 디자인 차별화를 앞세워 하늘색 병의 ‘진로이즈백’을 내놓은 뒤 상황은 달라졌다. 이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자 경쟁사들도 색과 형태를 달리한 병을 잇달아 출시했고 이후 소주 시장에서는 다양한 색과 형태로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무라벨 먹는샘물 제도 역시 소주병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모두가 비슷한 투명 페트병을 쓰는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디자인 차별화의 유혹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자인이 가장 손쉬운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업체가 시선을 끄는 포장을 다시 도입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무라벨 정책의 환경적 성과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기업과 소비자만 탓할 수는 없다. 기업은 본래 이윤을 추구하고 소비자는 디자인과 브랜드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결국 친환경 제도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좋은 취지나 권고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소비자가 어떤 요소에 끌려 선택을 바꾸는지까지 읽어내는 세심함을 제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무라벨 먹는샘물 제도가 소주병 공용화의 전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보다 촘촘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표준 용기를 사용하는 기업에는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주고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비표준 용기를 생산하는 기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지워야 한다. 페트병에 색상이나 화려한 무늬를 넣어 사실상 라벨 효과를 내는 우회적인 차별화 방식까지 제도 안에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 편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매장에서 제품 정보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QR 안내 체계를 보완하고 무라벨 제품을 선택하는 일이 불편이 아니라 편의로 느껴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친환경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더 합리적인 소비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소주병 공용화의 경험이 말해주듯 좋은 정책은 출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뒷받침할 장치가 있을 때만 비로소 오래갈 수 있다. 먹는샘물 무라벨 제도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그 성과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시장에서 다시 라벨 경쟁이 되살아날 여지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취지에 공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취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보완하는 일이다. 그래야 무라벨 생수는 소주병의 전철을 밟지 않고 지속 가능한 변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