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 뉴스1 권준언 기자
'이태원 참사는 마약 테러'라며 허위 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60대 남성이 과거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당시 민간인을 감금한 채 물고문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시 검거된 후 열린 재판에서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프락치를 응징했다"며 반성하지 않았다. 지금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2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사자명예훼손 및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조 모 씨는 서울대 국사학과 77학번으로,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주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사건 이후 1년 2개월 넘게 도피하다 지명수배 끝에 검거됐고, 1986년 4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현 서울남부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복학생협의회 회장으로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유시민 작가(서울대 78학번)는 출소 뒤인 1986년 책 '아침으로 가는 길'을 펴냈다. 유 작가는 이 책에서 재판을 받던 조 씨에 대해 "그는 지금 서울지법 남부지원의 1호 법정에서 잡범들과 함께 섞여 앉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징역 4년을 구형받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썼다.
책에는 당시 함께 재판받던 이들의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 등이 실렸다. 유 작가는 조 씨의 법정 최후진술 전문을 책에 옮기며 "그의 법정투쟁은 시종일관 철저할 만큼 당당하기만 했다", "열정적이면서도 진지하다"라고 적었다.
유 작가가 이처럼 평가한 조 씨의 최후진술에서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이 사건은 정확히 말해 '외부인 감금폭행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학원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사건'이라고 해야만 한다"며 "'외부인 감금폭행사건'이라 이름 붙인 것은 운동권을 폭력배의 집단으로 중상모략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본인은 분명히 프락치의 면상을 갈기고 복부를 걷어찼다"며 "그러나 이때의 폭력은 결코 범죄일 수 없다고 본인은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프락치를 응징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유시민 작가가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출소 이후 출간한 책 '아침으로 가는 길(1986)'. 책에는 사건에 대한 소회와 함께 재판을 받은 공범들의 항소이유서 등이 담겨 있다. 유 작가는 조 모 씨의 1심 최후진술 내용 전문도 책에 실었다. 책은 현재 절판됐다.© 뉴스1 권준언 기자
조 씨가 사건 당시 민간인을 직접 감금·폭행한 것은 물론, 물고문에도 가담한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유 작가가 책에 실은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조 씨 등은 피해자 전기동 씨를 약 30시간 동안 감금하고 학생회관 내 여자 화장실로 데려가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잠가 누르는 등 물고문했다. 피해자 전 씨는 당시 방송통신대 법학과 재학생으로, 리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를 찾았다가 이 같은 변을 당했다.
조 씨는 한 차례 물고문 뒤에도 전 씨가 '프락치'임을 자백하지 않자, 물고문을 반복하면서 폭행을 이어갔다. 판결문에는 "조 씨 등은 (전 씨의) 머리를 잡고 세면대 물통 속에 넣었다가 꺼내는 등 폭행을 가하고, 다시 서클연합회실로 데리고 간 다음 각목을 양 무릎 사이에 끼워 놓고 발로 밟고 옆구리와 배를 차는 등의 방법으로 전신을 구타했다"고 적혔다.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은 1984년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이 민간인을 '프락치'로 의심해 감금한 뒤 자백을 강요하며 물고문 등 집단 폭행을 가한 사건이다. 피해자 4명은 대학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이었다. 이들은 최소 22시간에서 최대 6일간 감금된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 주동자로 지목된 유 작가와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등 6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들은 모두 사면됐다. 유 작가를 포함한 5명은 1987년, 조 씨는 이듬해 특별사면·복권됐다.
조 씨는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와 해외 영상 플랫폼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을 담은 게시글 362개(동영상 299개·게시글 63개)를 올린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 씨는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압사해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테러범이 고의로 사람을 밀었다', '마약 테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취지의 글과 영상을 반복 게시했다.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희생자를 두고 "리얼돌처럼 보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e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