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0만원 양주 심부름”…사장님 울린 ‘노쇼 사기’[only 이데일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21일, 오전 06:32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경북 지역에서 갈비집을 운영하는 사장 이모(33) 씨는 최근 한 건설사의 김성민 과장이라는 남성으로부터 단체 회식 대관을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불황으로 매출이 급감해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던 이 씨에게 단체 손님은 너무 반가웠다.

김 과장은 예약 당일 “대표님이 좋아하는 술이 있는데 매장에 없으면 주류 업체 번호를 알려줄 테니 대신 결제해 달라”고 했다. 그가 지목한 술은 병당 98만원짜리 ‘아드백 30년산’ 위스키였다. 다소 의아한 부탁이었기에 이 씨가 “매장에서 직접 사면 안 되느냐”고 묻자 범인은 “사업자등록증이 있어야 구매 가능한 술이라 대신 부탁한다”며 “병당 40만원의 사례비를 주겠다”고 했다.

정신없이 저녁 영업을 준비하던 이 씨는 결국 술값 117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예약 시간이 되자 식당 앞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범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이 씨는 자신이 그제야 ‘노쇼 사기’에 당했다는 걸 알았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사건은 대전 유성경찰서에 접수됐고 광주 광산경찰서 통합수사팀으로 이송돼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점차 고도화 되는 ‘노쇼 시나리오’, 피해액 급증

‘군 부대 사칭’으로 시작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노쇼 사기가 올해도 이 씨와 같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고도화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수법에 건당 피해액도 크게 늘고 있다.

20일 경찰청이 이주영 의원실(개혁신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3월 발생한 노쇼 사기는 총 1947건, 피해액은 614억 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발생한 노쇼 사기(6515건·1256억 7000만원)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 피해의 절반 수준을 기록했다.

건당 피해액으로 보면 올해 1분기 약 3100만원 수준으로 작년(약 1900만원)보다 60% 이상이나 늘었다. 노쇼 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다보니 이씨의 사례처럼 고가의 술을 구매하게 하는 등 범죄 일당이 각 피해자에게 뜯어내는 금액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노쇼 사기는 실존하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사칭해 특정 업체에 물품 대금을 선결제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챙겨 잠적하는 피싱 범죄 수법 중 하나다. 피해는 비단 이씨만의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전국 각지에서 이씨와 동일한 수법의 피해를 호소하거나 범인의 연락을 받았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노쇼 사기 조직은 시기에 따라 대리구매 요청 주체를 바꿔가며 자영업자를 속인다. 정당을 사칭한 노쇼 사기가 대표적이다. 올해 6월 지방선거처럼 선거철이 되면 특정 정당의 선거 캠프 홍보실장 명함을 식당에 보내면서 수십명 단위의 회식을 예약하고, ‘회식비와 같이 결제할테니 와인을 미리 주문해 줄 수 있느냐’고 제안하는 식이다. 선거 캠프에서 거짓말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한 자영업자의 경우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을 사칭한 유사 범죄도 벌어지고 있다.

노쇼 사기의 원조격인 군부대 사칭 범죄는 국방부 소속 간부라고 속이고 전투용삽 및 전투식량 구매를 대신 해달라고 한 뒤 특정 계좌에 대신 돈을 넣어달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특히 군부대 인근의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의 주 고객층이 군 부대였던 만큼 이러한 수법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몸통은 동남아에… 애 먹는 사기꾼 검거

하지만 수사당국의 사기범 검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캄보디아에 꾸려졌던 피싱 조직들처럼 일종의 ‘피싱 그룹’을 만든 이들이 손을 뻗은 시나리오 범죄 중 하나여서다. 기존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몸캠피싱 △투자리딩방 △로맨스스캠 △노쇼 사기 등으로 나눠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캄보디아에서 일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다른 국가로 빠져나간 조직이 여전히 피싱 범죄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이런 조직을 소탕하지 않는 한 사기범 검거가 힘들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해 노쇼 사기 관련 사건 발생 건수인 6515건 중 검거 인원은 561명(8.6%)에 불과했다. 올해 1분기에도 발생 1947건 중 검거 인원은 210명(10.8%)으로 집계됐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경찰에선 자영업자들이 노쇼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위 수법과 같은 대량 주문 요구가 들어오면 반드시 휴대전화가 아닌 실제 사무실 번호로 전화해 예약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일정 금액을 미리 결제하도록 해 사기 범죄를 미연에 막는 것도 방법이다.

경찰 관계자는 “비대면은 모든 게 가짜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취급하지 않는 다른 물품을 대리구매 해달라는 것은 전형적인 노쇼 사기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영업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주영 의원은 “급증하는 노쇼 피싱 사기는 단순한 예약 부도를 넘어 조직화된 경제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며 “입법적 사각지대를 조속히 해소하고 정책적인 안전망을 마련해 선량한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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