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표 하나로 관리인 정해져…대법원, 문제삼은 이유[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02일, 오후 02:15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지하 6층, 지상 23층짜리 한 건물이 있다. 지하부터 지상 3층까지는 상가 40호, 4층부터 23층까지는 층별로 업무시설이 20호이다. 면적으로 보면 업무시설이 훨씬 넓다. 이 건물은 한때 업무시설을 통째로 가진 단 한 사람이 전체 의결권의 77.52퍼센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6월 어느 날 그 한 사람의 찬성표 하나로 건물 전체의 관리인이 정해졌다. 상가주 마흔 명의 표는 단 한 표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사진=나노바나나)
대법원은 2026년 2월 26일 이 결의의 근거가 된 규약 조항을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8조 제1항은 관리단집회의 의결을 구분소유자의 과반수와 의결권의 과반수로 정하고 있다. 인원 과반수와 면적 지분 과반수가 모두 충족되어야 결의가 성립한다. 그런데 이 사건 건물의 규약은 인원 과반수 요건을 빼고 의결권 과반수만 충족하면 관리인을 뽑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규약은 2011년 8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상가 40호의 소유권은 분양 직전 잠시 신탁회사 한 곳에 있었고, 업무시설 20호는 한 은행에 있었다. 신탁회사와 은행이 합의해서 규약을 만들었고 이후 수분양자 마흔 명에게 이 규약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정작 상가를 사들인 사람들은 규약 제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원심은 규약을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관리단은 자치 단체이므로 적법하게 만든 규약은 존중해야 하고, 소유주 과반수 요건을 빼는 것까지 자치의 범위에 든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집합건물법 제29조 제1항은 규약의 설정과 변경에 구분소유자와 의결권의 각 4분의 3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결정족수를 사람 소유주 과반수 요건 없이 의결권만으로 정한 규약은 그 자체로 강행규정과 충돌할 여지를 안고 있다. 게다가 이 사건 규약은 처음부터 수범자의 의사가 빠진 채 만들어졌다. 면적이 한쪽으로 몰린 건물이라 상가 쪽은 처음부터 의결권 과반수를 모을 수 없는 구조였다. 한 명이 77퍼센트를 쥐고 있는 한 규약을 바꿀 4분의 3 찬성 역시 그 한 명의 협조 없이는 모을 수 없다. 결국 이 규약은 상가 구분소유자들의 의사반영을 영구적으로 배제시킬 위험을 내포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어 무효라고 보았다.

한 가지 더 살펴볼 점이 있다. 2019년 12월에 이 건물의 업무시설 전체가 또 다른 은행 한 곳에 통째로 넘어가면서, 한 사람이 의결권 77.52퍼센트를 쥐는 구조가 그대로 굳었다. 규약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규약이 작동하는 환경은 분명해졌다. 그 결과가 2020년 6월 4일 결의다. 41명 중 15명이 출석한 자리에서 단 한 명의 찬성표로 관리인이 정해졌다.

이 판결은 주상복합이나 복합용도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들에게는 직접 와닿는 판결이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상가와 주거, 업무시설은 이해가 갈릴 때가 많다. 누가 규약을 만들었는가, 그 시점에 수분양자의 의사가 반영될 통로가 있었는가, 면적 편중 때문에 어느 한쪽이 사실상 결정권을 독점하지 않는가. 이 세 가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분양 단계에서 시행사 측 회사 한 곳이 다른 한 곳과 합의해 만든 규약이라면 적법한 절차를 거쳤더라도 내용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의의다.

집합건물법 제29조 제1항이 정한 규약 변경 정족수 4분의 3은 다수가 한쪽으로 몰린 건물에서는 사실상 변경을 막는 효과를 낸다. 이 상황에서 의결 규칙마저 구분소유자 과반수 요건을 배제하고 있다면, 한 사람이 관리단의 결정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환송심에서 이 사건 정족수 규정이 무효라는 전제 위에서 2020년 6월 결의의 의결정족수 미달 여부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결의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은 한 줄짜리 정족수 조항을 다투는 데서 시작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분양 시점에 누가 누구의 의사를 빼고 규약을 만들었는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했다. 주상복합이나 복합용도 건물의 상가 구분소유자라면, 자기 건물의 규약을 한 번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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