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 뉴스1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병상에서 남긴 구수(口授) 유언이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면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수증자 A 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청구한 예금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 씨의 배다른 가족 B 씨는 증인 2명과 A 씨가 입회한 가운데 예금채권 3건과 주거지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 등 자기 재산 전부를 A 씨에게 증여한다는 취지의 유언을 구수 방식으로 남겼다.
증인 1명은 B 씨의 유언을 필기한 뒤 이를 낭독했고, 변호사였던 다른 증인은 유언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당시 B 씨는 호흡이 어려운 상태에서 어눌한 발음으로 계좌번호 등을 겨우 말할 수 있었으며, 일부 재산의 세부 내용은 제3자의 도움을 받아 표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B 씨는 유언 후 사흘 만에 사망했고, A 씨는 7일 후 서울가정법원에 유언 검인을 신청했다. 법원은 약 5개월 뒤 이를 인용했고, B 씨의 상속인들도 유언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후 A 씨는 예금채권에 대해 우리은행을 상대로 요구한 9600만여 원의 지급이 거부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민법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및 비밀증서의 방식으로 유언할 수 없는 경우에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허용하고 있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그 밖에 급박한 사유로 인해 다른 방식에 따라 유언할 수 없는 경우에 유언자가 2명 이상의 증인의 참여로 그 1명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그 구수를 받은 사람이 이를 필기낭독해 유언자의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것을 말한다.
1·2심은 B 씨가 당시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등을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던 만큼 녹음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B 씨의 상태를 고려할 때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른 유언이 객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유언의 요식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판단할 때 그런 취지가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언자가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등을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해서 곧바로 구수증서 외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shushu@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