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근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NPO연대 회장
"어린이를 때리지 말고, 욕하지 말고, 부리지 말자. 어린이를 높이 쳐다보자."
선생께서는 특히 어린이에 대한 인격적 대우를 주장하며 어린이날 제정에 앞장섰다. 이는 1924년 국제연맹이 선포한 제네바 선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수준의 아동 권리 선언이었다.
어버이날이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효를 강조하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듯이 어린이날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에게 선물을 사 주거나 함께 나들이하며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에 더해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며 '이 땅의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깊이 생각하는 날이 돼야 할 것이다.
1989년 11월 20일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를 포함한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 아동을 보호의 대상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이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는 인류사에서 아동의 권리를 신장하고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기념할 만한 국제사회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적 가족 중심의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권리의 개념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존중되는 서구 사회와는 달랐다. 기존의 조화나 사회관계를 무너뜨리는 대립적 차원에서 이해되면서 아동의 권리 자체가 법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문화적 특성을 지녀왔다.
아동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약속인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서 아동의 존귀성과 건전한 성장 발달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순종과 스승에 대한 존경이 강조된 문화권에서 아동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아동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며 그 권리를 보장하려는 아동권리 사상은 서구 사회보다 매우 미흡한 점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탓에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국가의 근간인 헌법과 법률 체계 속에서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우리 헌법을 다시 살펴보면 아쉬움이 크다.
현행 헌법 제34조는 노인과 청소년, 모성의 복지 향상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아동'이라는 단어는 독립된 인권 주체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 4월 2일, 개헌 논의 속에서 아동들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에 우리의 이름을 넣어 달라"고 외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동단체와 학계는 2010년부터 아동을 보호 대상을 넘어선 권리의 주체로 명시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개헌의 핵심 과제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돈다.
UNCRC의 정신을 국내법으로 수용할 '아동기본법'도 우리나라가 이 협약을 비준한 지 35년이 지나도록 부재하다. 아동복지법 등 개별법은 있으나 이를 관통하는 철학이 없다 보니 정책은 늘 부처별로 파편화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 아동 학대, 이주 배경 아동에 대한 차별 등 UNCRC 등 국제 기준과 배치되는 현실적 비극과도 마주해야 한다.
아동단체 등으로 구성된 UNCRC 한국NPO연대는 현재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차 국가보고서에 앞서 시민사회 보고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새로 도입된 보고 절차에 따라 △시민사회 보고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사전쟁점목록(질의) △정부보고서(답변) 등의 순서로 심의가 진행된다.
아동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보낼 질문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따른 국가의 '보고'가 아니라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높이 쳐다보자"라고 외친 것처럼 아동의 실질적 권리를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올려다보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04년 전 방정환 선생은 자신이 펼치려는 어린이 사랑 운동이 호수에 던진 조약돌이 일으키는 작은 물결 같겠지만 앞으로 삼천리 반도 이 강산에 도도히 흘러넘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올해 어린이날이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가 생존, 보호, 발달, 참여 권리의 수혜자가 아닌 당당한 '권리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제7차 심의 대응 준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이행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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