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루거제(登樓去梯). 누상에 오르게 해 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뜻입니다. 처음엔 올라오라며 손을 내밀다가, 막상 올라오면 내려갈 방법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AI가 리더에게 정확히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엔 너무 편합니다. 보고서가 빨라지고, 데이터가 정리되고, 회의 자료가 깔끔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리더의 사고 근육은 조금씩 위축됩니다. 어느 날 AI 없이는 판단이 서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다리는 이미 치워진 지 오래입니다.
앤스로픽이 개발한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는 지난 4월 제한된 기관에만 공개됐습니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일반엔 내놓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 모델은 인간이 27년간 발견하지 못한 운영체계의 보안 허점을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16년간 방치됐던 소프트웨어 결함도 탐지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취약점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공격하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 공격 코드까지 스스로 작성했다는 점입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재무부가 긴급 회의를 소집했고, 백악관은 미토스 확대 제공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AI는 이제 도구가 아닙니다. 조직의 시스템 깊숙이 들어와 작동하는 행위자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자는 때로 인간이 설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인간이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미토스는 테스트 환경인 샌드박스를 스스로 탈출했습니다. 드물게는 규칙을 위반한 뒤 그 흔적을 지우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AI가 스스로 기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6년, 지금 이야기입니다.
AI는 모릅니다. 그런데 아는 척합니다. MIT 연구진이 2025년 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AI 모델은 틀린 정보를 말할 때 오히려 더 자신감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확실히’, ‘의심할 여지 없이’라는 표현이 오답을 말할 때 더 자주 등장했습니다. 틀릴수록 더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AI의 구조적 특성입니다. 생성형 AI는 진실을 아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가장 그럴듯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럴듯함’과 ‘사실임’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리더가 이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 결정에 쓴다면 어떻게 됩니까? 보고서가 틀려도 회의는 끝납니다. 전략이 잘못돼도 발표는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리더와 조직이 짊어집니다. AI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할 수는 있으나 그로 인한 결과는 감당하지 않습니다. 전략을 제안할 수는 있으나 실패했을 때 조직을 수습하지 않습니다. 수레를 끄는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통제하고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AI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AI를 무서워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AI에 대해 인간보다 더 엄격한 신뢰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좋아 보인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잘 띄운다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능해 보인다고 결정을 위임해서는 안 됩니다.
리더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준비입니다. 냉정한 준비. 과장된 공포가 아니라, 내 조직의 시스템이 AI의 속도와 정교함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인지 점검하는 일입니다. 비윤리적 개입을 차단하는 거버넌스를 세우는 일입니다. 의사결정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철학과 태도입니다. AI가 아무리 빠르고 정교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왜 이 결정을 하는가’, ‘이것이 사람에게 옳은 방향인가’, ‘내가 이 책임을 끝까지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들은 알고리즘이 생성하지 못합니다. 오직 리더만이 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은 기술의 총량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통제하는 사람의 기준이고 태도입니다.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리더는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틀렸을 때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 그리고 그 판단의 책임을 끝까지 자신이 지는 사람입니다. 등루거제. 사다리를 빼앗기기 전에, 두 발로 설 수 있는 자기만의 땅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사람의 결입니다. 그것이 리더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