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죽음 앞에 '심신장애' 주장…배심원 7명이 본 남편의 23분

사회

뉴스1,

2026년 5월 06일, 오전 08:00


말다툼이 아내를 삼킨 불길로 번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3분에 불과했다. 불을 지른 남편 A 씨(50대)는 술에 취해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부부의 말싸움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2시쯤부터였다. 회사 사무실 근처에서 늦은 점심 겸 술 한잔을 걸친 두 사람은 A 씨의 채무 문제로 언성이 높아졌다.

그날 밤 사무실로 먼저 돌아간 A 씨는 자정쯤 사무실에 들른 아내와 마주쳤다. 부부의 말싸움은 2차전으로 이어졌다.

격분한 A 씨는 오전 12시 23분쯤 사무실 난로를 양손으로 쓰러뜨렸다. 난로에서 샌 등유가 바닥에 퍼졌다. A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쏘시개가 될 만한 쇼핑백, 쓰레기봉투 등을 등유 위에 쌓았다. 그리고는 토치에 부탄가스를 연결해 불을 놨다.

9명이 자력 대피했고 6명은 소방에 의해 구조됐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A 씨의 아내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화상을 입고 다발성 장기 부전·전신성 패혈증으로 고통받던 아내는 올해 1월 말 숨졌다.

A 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한 그는 "사건 범행 당시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술에 취해 제대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변이었다.

하지만 평결에 참여한 배심원은 7:0 만장일치로 A 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범행 경위와 전후 피고인의 행동을 법리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이 술에 취했던 것은 맞지만 형법상 인정되는 '심신장애' 상태까지는 아니었다고 본 것이다.

과거 A 씨의 행동도 배심원들의 결정에 무게를 실었다. A 씨는 부부싸움을 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주변 물건들을 부숴 가정폭력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 이 교육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이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과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며 지금까지 A 씨의 범행 이력을 감안하면 무거운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단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미성년자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보았다.

재판부는 배심원 7명 중 5명이 제시한 징역 10년 의견을 받아들였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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