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불편한 부모님, 무릎 아닌 ‘경추’ 문제일 수 있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06일, 오후 03:19

[이데일리 이순용 의학전문기자] “요즘 들어 자꾸 물건을 떨어뜨리세요. 젓가락질도 힘들어하시고, 걸을 때도 중심을 잘 못 잡으시는 것 같아요.”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려던 직장인 최모 씨는 최근 아버지의 변화를 이상하게 느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했다. 무릎이 안 좋아져 걸음이 느려진 것 같았고, 손이 둔해진 것도 단순한 노화의 일부로 여겼다.

하지만 증상은 점점 뚜렷해졌다. 옷 단추를 채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불안해 보였다. 결국 병원을 찾은 최 씨의 아버지는 예상과 달리 무릎이나 허리 문제가 아닌, 목에서 신경이 눌리는 ‘경추척수증’ 진단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노화 증상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일상 속 작은 변화가 척수 압박으로 인한 신경 질환의 신호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손의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보행이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단순한 노화로 넘기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강릉아산병원 척추센터 장선우 신경외과 교수는 “경추척수증은 대개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노화나 단순한 목 디스크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대소변 장애나 사지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목 디스크와 다른 ‘경추척수증’ ... 중추신경이 눌리는 질환

경추척수증은 단순한 통증 질환이 아니라, 우리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중추신경인 ‘척수’가 압박되는 질환이다. 척수(Spinal cord)는 뇌에서 시작돼 척추관(척추 속 통로)을 따라 내려가며 온몸으로 감각과 운동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통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목 디스크는 척수에서 갈라져 나온 신경근을 눌러 통증과 저림을 유발하는 말초신경 문제지만, 경추척수증은 디스크나 퇴행성 변화로 척수 자체가 눌리면서 손과 발의 기능 저하, 보행 장애 등 ‘마비’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손이 둔해지고 걸음이 달라졌다”... 놓치기 쉬운 초기 신호

경추척수증은 서서히 진행돼 노화나 단순 디스크로 오해되기 쉽다. 젓가락질이 어색해지거나 단추를 채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손의 미세한 움직임 변화는 중요한 초기 신호다.

여기에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동반된다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보행 장애는 무릎이나 허리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원인은 목에 있는 경우가 많다.

장 교수는 “뇌에서 출발한 운동 신경은 반드시 경추를 지나기 때문에, 목에서 척수가 눌리면 다리에 힘이 빠지고 비틀거리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추척수증은 퇴행성 변화나 외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데,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좁은 사람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작은 퇴행이나 경미한 외상, 디스크 탈출증에도 척수가 쉽게 압박될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 가벼운 낙상에도 사지마비 ... “방치가 더 위험”

경추척수증의 가장 큰 위험성은 가벼운 외상에도 급성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척추관이 좁아져 척수가 아슬하게 눌려 있는 상태에서는 가벼운 교통사고나 미끄러지는 낙상만으로도 척수가 손상돼 하루아침에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장 교수는 “작은 외상으로 갑작스럽게 사지마비가 발생해 내원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며 “평소 증상이 크지 않아, 모르고 방치하다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추척수증은 문진과 신경학적 검사에 이어 X-ray와 CT, MRI 검사를 통해 진단하며, 척추관 협착 정도와 척수 압박, 신경 손상 여부 등을 확인한다.

◇ “마비 증상 나타나면 수술”… 치료 시기 놓치지 않아야

손의 기능 저하나 보행 장애 등 마비 증상이 나타나면 수술적 치료가 원칙이다. 약물이나 물리치료만으로는 좁아진 신경 통로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술은 디스크나 뼈, 두꺼워진 인대를 제거해 척수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환자 상태에 따라 전방 경추 유합술(ACDF)이나 후궁성형술(Laminoplasty) 등이 시행된다.

기존 후방접근 수술은 목 뒤쪽의 근육을 넓게 제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통증과 목의 정상적인 배열이 무너지는 부담이 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근육을 보존하는 최소침습 수술이 도입되면서 목의 안정성을 높이고 회복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 “통증보다 기능 변화”... 어버이날, 부모님 걸음부터 살펴야

경추척수증은 통증이 뚜렷하지 않아 단순 노화로 오인되기 쉽지만, 일상 속 작은 기능 변화로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손놀림이나 걸음걸이의 변화는 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가족의 관심이 조기 발견에 큰 역할을 한다.

장선우 교수는 “경추척수증은 통증보다 기능 변화가 더 중요한 신호다”며, “젓가락질이나 보행에 작은 변화라도 보인다면 반드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의 건강을 살필 때는 무릎이나 허리 통증뿐 아니라 손놀림과 보행 상태까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기에 발견하면 질환의 진행을 막고 삶의 질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릉아산병원 척추센터 장선우 신경외과 교수가 경추척수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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