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재 기자] “나에게 강남역이란 여전한 현실이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한 술집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당시 34살이었던 김성민. 그는 사건 직전 화장실에 출입한 6명의 남성은 그냥 보내고 여성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김성민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는 수 천장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여자라서 죽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외침이 벽을 가득 채웠다.
157개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이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및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정유진 수습기자)
157개 여성시민단체가 모인 ‘강남역 여성살해 10주기 추모행동’은 이날 추모행동 및 집회를 진행했다. 검은 티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은 ‘강남역 10주기 추모를 딛고 행동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살아남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고 외쳤다. 이들은 강남역 사건 이후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 등을 언급하며 “여성 폭력은 특정 지역이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전반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아 젠더폭력해결페미니스트연대 공동대표는 “강남역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에게는 신당역, 인하대, 진주, 부산, 남양주, 대구, 광주까지 기억해야 할 장소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들은) 스토킹과 교제폭력, 디지털 성폭력, 딥페이크 성범죄처럼 계속 늘어나는 범죄와 싸워왔고, 2026년 치안 1위라는 대한민국에서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로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10주기 추모행동 및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사진=정유진 수습기자)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박남규(60) 씨는 매년 이 맘때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는다고 했다. 박 씨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 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들의 인권이 존중받고, 안전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자 참석했다”고 말했다.
추모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항의를 표현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인천광역시에 거주하는 배정서(24) 씨는 “여성 혐오가 만연한 풍토를 근절하고, 여성을 향한 폭력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에서 끝까지 함께했다”고 했다.
이날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10년 전과 같이 여성 폭력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차별과 성폭력 없는 사회를 기원하는 내용의 포스트잇들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김지혜(51) 씨는 “우리 사회가 생명의 존엄함을 중요시하고,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벽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17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의 메시지가 붙어있다.(사진=정유진 수습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