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결혼까지 포기했던 공익 변호사 "지속 가능한 프로보노 만들고파"

사회

뉴스1,

2026년 5월 25일, 오전 07:00

고지운 공익전담변호사가 2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재정적인 부분이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 친구들과 만남은 최대한 줄이고 대신 바쁘게 일만 하고 지내며 지출을 최대한 아꼈습니다. 고지운 변호사(변호사시험 1회·48)는 14년째 공익 전담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의사가 의료봉사를 하듯 변호사가 되면 법률봉사를 하고 싶었다는 고 변호사. 그는 2012년 3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서울 종로구 혜화동 소재 한 천주교 성당 앞에서 우연한 기회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하게 됐다.

고 변호사를 찾아온 이주 여성들은 가정폭력, 임금체불 등 저마다 고충을 겪고 있었다. 이주 여성들은 대체로 언어적, 시간적 문제로 외부 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사정을 알고도 모른척할 수 없었던 고 변호사는 이주 여성들을 상대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2014년 3년 비영리민간단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감동)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주민 전문 공익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뉴스1>은 지난 22일 센터가 위치한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 5층에서 고 변호사를 만났다.

독립도 결혼도 포기했던공익 전담 변호
공익 전담 변호사는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프로보노'(pro bono) 활동을 전업으로 한다. 수임료를 일절 받지 않는 점에서 국선 전담 변호사와 유사하지만 국가로부터 소정의 월급을 받는 국선 변호사와 달리 공익 변호사에게는 일정한 보수가 없다.

'무보수'는 공익 변호사들의 현실적인 문제다. 고 변호사는 부모님 집에 살면서 주거비를 아끼고 사회생활이나 취미 활동을 최대한 대한 자제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아꼈다. 그에게 경제적인 문제는 극복 가능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제때 식사하지 못하고 바삐 뛰어다니다가 아킬레스건에 이상이 생겼는데 이를 계속 방치하다가 그만 걷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주변 지인들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일만 하는 고 변호사를 걱정해 소개팅을 주선했다. 비혼주의자였던 그는 여러 번 제안을 고사했지만 우연한 자리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고 변호사는 "12년 전 센터를 설립하고 프로보노를 전업으로 삼으면서 사실상 결혼은 포기했었다"며 "아이는 결혼 나이가 늦기도 했지만, 출산과 육아가 재정적으로 부담돼 엄두도 못 냈다"고 밝혔다.

그는 갓 변호사가 된 20대 후반의 여자 후배가 언젠가 로스쿨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익 변호사가 되려면 독립과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내심 씁쓸했다고 했다.

실질적 지원 방안…법률 지원·기금 조성
고지운 공익전담변호사가 2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권현진 기자

고 변호사는 지속 가능한 프로보노를 위해서는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송을 위해서는 수임료 외에도 각종 부대 비용이 많이 든다.

이를테면 소장 등 소송 서류를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송달료, 민사소송 접수 시 법원에 납부하는 인지대 등이다. 법원에 소송구제 신청을 하면 일부 면제를 받을 수 있지만 소송구제 신청 비용을 비롯한 일체 소송 비용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주민 공익 소송의 경우 통역비도 만만치 않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특정 국가의 언어를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봉사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필요시 통역사를 고용하고 있다.

더욱이 지방에 거주하는 이주민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재판 출석을 위한 교통비까지 지원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이 해결책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소송에 제약받고 싶지 않다'는 고 변호사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

고 변호사는 "정부 기관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게 되면 행정소송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다 보니 개인이나 민간단체의 후원만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재정 안정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민 지원 기금 조성'은 센터의 중장기 목표다. 정부, 민간 출연금, 운용 수익 등으로 기금을 모아 안정적인 재원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조성된 기금은 공익 소송 절차 전반에 드는 비용을 적재적소에 보다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주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센터는 모든 이주민을 무료 소송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형사 사건의 경우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에 대해서만 지원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는 당연히 배제된다.

다만 예외가 있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피의자가 된 경우다. 이를테면,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목 졸림 당해 몸부림치다 남편의 신체 일부에 상처를 내 상해죄로 역고소된 경우, 공장 내 휴게실에 놓여있는 모포 1장을 기숙사 방에 가져와 덮고 자다가 절도죄로 고소당한 경우 등이다.

저출산, 고령화, 지역소멸 등 이유로 국내 이주민 유입이 늘어나면서 이주민 관련 분쟁도 많아지는 추세다. 고 변호사는 "내국민과 이주민 간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함께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국내 이주민 대책에 대해 그는 "이주민을 마냥 보호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오랜 기간 거주하며 경제활동 하는 이주민에 대해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이주민들이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강제 추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사회 구성원으로 의무를 다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속 가능한 프로보노 환경 만들고파"
고 변호사는 "처음 공익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젊었으니까 가능했다"며 "이 활동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지금도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솔직히 그만두려고 한 적도 많았다"면서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내 피해 이주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개인적인 바람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오랫동안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것이다.

고 변호사는 "공익 변호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너무 측은하게만 보이지 않도록, 일과 생활을 분리하면서 지속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활동하는 국내 120여명의 공익 변호사가 10년, 20년이 지나도 이탈하지 않고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그때는 좀 더 후배 변호사들도 많아지고 프로보노 활동이 안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younme@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