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기고 판 땅, 그 계약까지 무효일까[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30일, 오전 12:31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법을 어기고 맺은 계약은 무효일까.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여긴다. 그러나 법을 위반했다는 사실과 그 계약이 유효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법원이 산업단지 공장용지를 둘러싼 130억 원짜리 매매계약에서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대법원 2026. 1. 8. 선고 2025다211003 판결).

(사진=나노바나나)
창원의 한 일반산업단지 안에 운송장비 제조업체만 입주할 수 있는 공장용지가 있었다. 부동산 매매업과 철강업을 하는 회사가 2022년 1월 경매가 진행 중이던 이 땅을 100억 원에 매수했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업집적법)은 분양으로 산업용지를 취득한 사람이 정해진 기간 안에 입주계약을 맺지 못하면 그 땅을 관리기관 등에만 되팔도록 정한다. 그런데 이 회사는 관리기관인 시와 입주계약을 맺지 않은 채, 석 달 남짓 만에 컨테이너 창고업을 하는 다른 회사에 130억 원으로 되팔았다. 30억 원을 더한 셈이다. 매수한 회사는 계약금 13억 원을 건넸다가 뒤늦게 이 매매가 무효라며 그 돈의 반환을 청구했다.

원심은 매수인의 손을 들어줬다. 산업집적법의 처분 제한 조항은 산업용지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으려는 고도의 공익을 담은 효력규정, 곧 강행법규이므로 이를 어긴 매매계약은 무효라고 보았다. 무효라면 받은 계약금 13억 원은 돌려줘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어떤 금지규정을 위반한 계약이 무효인지는, 그 규정이 위반행위의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해야 할 만큼 강한 것인지에 달려 있다. 법이 직접 무효라고 정했거나 효력규정임을 밝혔다면 그 계약은 무효다. 그렇지 않다면 입법 취지, 보호하려는 이익, 위반의 중대성, 거래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 따져 가린다. 대법원은 이 잣대로 산업집적법의 처분 제한 조항을 단속규정으로 보았다. 위반한 사람을 형사처벌하고 행정적으로 규제하면 법의 목적은 이룰 수 있고, 사인 사이의 거래 자체를 막는 조항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위반 계약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하면 오래 쌓인 거래관계가 언제든 흔들리고, 때로는 되판 사람이 더 큰 차익을 챙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은 단서를 달았다. 두 회사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짜고서 처분 제한을 어겼다면, 그 매매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반하는 계약으로서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도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고, 매수인이 13억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환송된 법원에서 다시 가려진다.

이 구분은 일상의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을 어기고 맺은 계약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위반에 처벌이 따르더라도 계약의 효력은 그대로 인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허가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은 거래나 중간 등기를 생략하기로 한 합의가 그런 예다. 법은 이를 금지하고 어긴 사람을 제재하지만, 사고판 행위 자체의 효력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반대로 법이 그 거래의 결과 자체를 막으려는 규정이라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그래서 부동산을 살 때는 그 땅이나 건물에 처분을 제한하는 규정이 적용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특히 산업단지 용지처럼 입주 자격과 처분 상대방, 처분 가격까지 법으로 묶인 땅은 겉으로 드러난 가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위반이 곧 계약 무효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규정을 어긴 책임과 계약을 지킬 책임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되판 회사가 입주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 매수인은 그 땅을 본래 목적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계약상 의무에서는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