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사건의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그해 7월 보험사와 질병으로 수술을 받을 경우 수술 1회당 질병수술비 30만 원을 지급받는 무배당건강명의수술비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A씨는 2016년 9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379회에 걸쳐 티눈·굳은살 제거를 위한 냉동응고술을 받고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이 중 114회분에 대해서는 합계 약 3493만 원을 지급했으나, 나머지 시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거절했다.
보험사는 A씨를 상대로 먼저 소를 제기했다. 2017년 9월 보험계약이 민법 제103조(선량한 풍속 위반)에 따라 무효라고 주장하며 보험계약 무효 확인 및 기지급 보험금 상당액의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낸 것이다. 그러나 1·2심 모두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했고, 이 판결은 2020년 2월 확정됐다. 보험계약이 민법 103조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후 A씨가 미지급 보험금 지급을 구하는 본소를 제기하자, 보험사는 반소로 맞섰다. 보험사는 이 사건에서도 보험계약이 민법 103조에 반해 무효라고 주장하거나, 설령 유효하더라도 티눈·굳은살은 약관상 면책질병에 해당해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며 기지급 보험금 전액의 반환을 요구했다.
1심은 보험계약이 보험사고를 가장하거나 과장해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민법 103조에 따라 무효라고 봤다. 다만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었기에, 전소의 사실심 변론 종결 이후 새로운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보아 보험사가 다시 무효를 다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기지급 보험금 중 일부인 약 1천784만 원을 반환하라고 했다. A씨의 본소 청구와 보험사의 나머지 반소 청구는 각 기각했다. 2심도 항소를 기각해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원심과 결론은 같았지만 이유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보험사가 이 사건에서 보험계약이 무효라고 재차 주장하는 것은 선행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돼 허용될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기판력 있는 전소 판결의 소송물과 동일하거나, 전소 판단이 후소의 선결문제가 되거나 모순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후소에서 전소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소 변론 종결 이후 새로운 사정이 생겼다는 이유로 기판력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기판력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한 것은 면책 조항 해석에서 원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 보험 약관은 질병수술비 보장과 관련해 ‘주근깨, 다모, 무모, 백모증, 딸기코(주사비), 점, 모반, 사마귀, 여드름, 노화현상으로 인한 탈모 등 피부질환 중 어느 한 가지로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티눈·굳은살 역시 이 면책 조항에서 정한 피부질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보험계약이 유효하더라도 보험사가 A씨에게 냉동응고술에 대한 질병수술비를 지급할 의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원심이 기판력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더라도 판결 결과에는 영향이 없어 상고를 기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