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넘어간 직장내 괴롭힘…피해자들 우울증·공황장애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12일, 오전 05:52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정유진 수습기자] 익명 커뮤니티의 구조적 특징이 온라인상의 ‘인격 살해’를 방치하는 모양새다. 특정 플랫폼에 게재한 글을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갈무리한 글이 퍼져나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어서다. 또 작성자를 잡지 못한다면 또 다시 같은 글이 올라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작금의 상황이 아니다. 2021년 LH 직원 추정 작성자가 블라인드에 시민들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경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가해자를 특정할 정보를 확보하지 못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블라인드 외에 다른 해외 플랫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플루언서 한 모 씨는 플랫폼 내 수익화 인증 등과 관련해 악의적으로 왜곡된 글이 메타가 운영하는 ‘스레드’에 소위 박제되면서 1년 넘게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한씨는 “특정 가해자를 상대로 세 차례나 형사고소를 진행했지만 해외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며 “온라인상에서 평판이 실추되면서 법인 활동과 매출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피해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겪으며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사례가 빈번한 실정이다.

(이미지= 생성형 AI로 제작)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조직을 흔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최근 한 항공사에 입사한 승무원 김 모 씨는 블라인드로 인한 사내 갈등을 직접 목격했다. 선배 승무원들이 블라인드에 신입 기수들을 겨냥해 “MZ세대”, “싹수가 노랗다”며 공개 비난 글을 올린 것이다.

김씨는 “실명은 없었지만 기수 번호와 행동 특징을 언급해 내부에서는 누군지 다 알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같은 기수 동료 전체가 욕을 먹고 한동안 눈치를 보며 다녀야 했다”고 전했다. 이어 “항공사 특유의 강한 위계 문화가 익명 커뮤니티와 결합하면서 뒤에서 공개적으로 욕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아 거부감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해외 플랫폼 관련 사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명예훼손 사건 전문 김수열 변호사(뉴로이어법률사무소)는 “미국법상 명예훼손 및 모욕이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수사기관이 국제 사법공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모욕·명예훼손죄가 있고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어도 당사자나 주변에서 특정할 수 있다면 플랫폼 기업이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해외 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갖는 사회적 책임을 상기시키고 이를 준수하라고 압박하는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조직 차원의 시스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인 직장 내 괴롭힘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확장된 괴롭힘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던져진 새로운 숙제”라며 “플랫폼을 통한 괴롭힘은 비대면 특성상 오히려 대면보다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적·사적 성격이 혼재된 사안이라도 내부에 정비할 수 있는 체제나 매뉴얼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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