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왼쪽 일곱 번째)과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해 있다. 2026.3.19 © 뉴스1 박정호 기자
음주 운전 교통사고를 낸 뒤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주겠다'는 동승자 제안에 응해 차 안에서 자리를 바꾼 운전자를 범인도피 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범인도피 방조, 도로교통법 위반(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교통단속 경찰관이었던 A 씨는 2023년 5월 혈중알코올농도 0.097% 상태로 약 3㎞를 운전하다 전방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을 들이받았다.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친구 B 씨가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주겠다"고 하자, A 씨는 이에 동의하고 뒷좌석으로 이동했다.
B 씨는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탄 뒤 운전석 문으로 내렸고, A 씨는 조수석 뒷문으로 내려 마치 B 씨가 운전한 것 같은 외형을 만들었다.
이후 A 씨는 보험회사에 "B 씨가 운전했다"고 말했고, B 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내가 운전했다"고 말하면서 음주 측정에 응했다.
1심은 A 씨의 범인도피 방조와 음주 운전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A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쟁점은 음주 운전 범인인 A 씨가 자신을 위해 동승자가 허위 진술하는 것을 방조한 행위가 범인도피 방조죄에 해당하는지였다.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은 기존 판례 법리가 타당하다고 봤다.
그간 대법원은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방어권 범위 안에 있어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았다. 다만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 자백을 촉진·강화·용이하게 하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봐왔다.
대법원은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진범의 존재를 감추고 수사 방향 자체를 왜곡한다"며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짚었다.
또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에서 교사와 방조를 구분해 방조에 대해서만 방어권 남용 법리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 씨에 대해서도 "음주 운전을 하지 않은 친구가 자신을 위해 경찰관에게 운전자라고 허위 진술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고, 그로 인해 진범 발견을 방해해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했다"며 범인도피 방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을 내며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봤다.
이들 대법관은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비호하려는 범인도피죄 본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일 뿐 스스로 도피행위를 한 범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다"라며 "자기 도피 행위는 범인도피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인의 방조 행위는 교사행위와 달리 타인을 타락시키거나 새로운 범죄자를 창출하는 행위반가치가 없다"며 "본질적으로 자기방어와 이익을 위한 인간 본성에 따른 자기 도피행위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라고 봤다.
또 "범인의 방조 행위에 대해서까지 예외적 방어권 남용 법리를 확대 적용해 범인도피죄 처벌 영역을 넓히는 것은 법리 적용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죄형법정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재판부를 말한다.통상 전합 회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 일치가 안 됐거나 기존 판례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경우, 법리적 중요성이 큰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릴 때 이뤄진다.
saem@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