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 가기 전 관계회복부터…갈등 커지기 전 풀어야"[교육in]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20일, 오전 06:01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관계회복숙려제는 피해 학생들의 회복을 돕고 가해 학생들에게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배울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서정기 한국회복적정의실천가협회 이사장. (사진=본인 제공)
서정기 한국회복적정의실천가협회 이사장은 1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학교폭력 사안이 신고되는 순간 작은 갈등도 법적 분쟁처럼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 이사장은 15년 넘게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 사안의 당사자 간 갈등 조정과 관계 회복을 지원해 온 관계조정가다.

관계회복숙려제는 초1~2 학생 사이에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경우 학폭위 심의에 앞서 학생 간 갈등을 중재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올해 3월부터 경미한 학폭에 대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경미한 학폭은 △2주 이상의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재산상 피해가 없는 경우 또는 재산상 피해가 즉각 복구되거나 복구 약속이 있는 경우 △학교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제공 등에 대한 보복행위(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행위를 포함)가 아닌 경우 등에 모두 해당하는 학폭 사안이다. 학폭 당사자들이 전부 동의하면 관계회복숙려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제도는 이전부터 일부 시·도교육청에 있었다. 경기도교육청은 화해중재단을, 경남교육청과 강원교육청은 각각 관계회복지원단, 갈등전환지원단을 운영해왔다.

관계회복숙려제는 사전 안내와 사전 개별 면담, 당사자 간 대화, 종결·사후 관리 등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 조정가는 먼저 당사자 학생들을 따로 만나 갈등의 배경과 심리 상태, 해결하고 싶은 내용을 살핀다. 이후 양측이 모두 동의하면 당사자 학생과 조정가가 함께 만나 대화를 시작한다. 학생들은 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과하며 향후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합의한다.

관계 회복이 학폭 사건 이전처럼 친해지는 것만 뜻하지는 않는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 옆에 가지 않거나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식으로 당사자들이 합의할 수도 있다. 서 이사장은 관계회복숙려제를 통해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사과·용서하는 과정을 배우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이사장은 “피해 학생이 원한다면 조정 절차를 마치고도 학폭위가 열릴 수 있지만 관계회복숙려제를 통해 피해 학생의 피해 회복과 가해 학생의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이는 학생의 성장에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때에 따라서는 작은 갈등이 큰 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2024년 학교 내 갈등 사안 1803건이 중재 절차를 밟았다. 이 중 약 90%에 달하는 1620건이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중재에 성공했다. 만족도 조사에서도 응답자 2177명 중 1807명(83%)이 ‘만족’한다고 했다.

서 이사장은 학폭 사안에서 학생들의 잘잘못을 따지고 처벌 여부에만 집중하면 정작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학생에게 ‘네 행동이 잘못됐다’라고만 지적하면 학생은 방어적으로 변하기 쉽다”며 “피해 학생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해하도록 도우면 가해 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줬다는 책임감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벌만 받고 끝나면 잘못한 아이들은 ‘벌을 받았으니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 이사장은 관계회복숙려제가 학교 현장에 안착하려면 관계조정가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교육당국이 뛰어난 관계조정가를 양성할 연수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중재에 성공한 우수 사례를 발굴해 공유·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 이사장은 “당사자들의 심정을 살피고 서로 다른 입장의 당사자들을 중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정가들은 고도의 역량이 필요하다”며 “우수한 관계조정가를 육성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