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제폭력' 입법 공백 더는 안돼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24일, 오전 08:50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더 이상 가해자와 혼인할 의사가 없습니다.”

동거 중인 애인으로부터 폭력피해를 당한 여성이 조사 과정에서 뱉은 이 한마디에 경찰이 신청한 접근금지조치(임시조치)는 검찰단계에서 기각되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임시조치의 법적근거가 배우자나 사실혼 관계 등 ‘가정구성원’간 폭력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가정폭력처벌법’에 있다.

폭력 피해 이후 가해자와 혼인 의사가 없다고 한 피해자의 진술이 애초에 사실혼 관계가 아니란 판단으로 이어지고 도리어 피해자를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사진= 경찰청)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 (사진= 경찰청)
우리나라는 현재 교제폭력에 대한 정의에 기반해 가해자·피해자 분리,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이 없다. 경찰청은 이러한 입법 공백 하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2025년 8월 교제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상황별로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처벌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가이드를 제시한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제작해 대응했다.

현장의 경찰관은 사실혼 여부를 확인 후 메시지 전송 횟수나 접근 사실 등 스토킹행위(스토킹범죄) 요건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 교제관계다”, “지속·반복성이 없다”며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상의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가 검찰 및 법원단계에서 기각되고 있다.

교제폭력 관련 입법 미비에 따른 현장의 한계는 실무적으로 예상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최근 시행한 소위 ‘법왜곡죄’는 일선 경찰관들에게 커다란 압박이다.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했다가 가해자 측으로부터 “법을 자의적으로 왜곡해 적용했다”며 고소·고발까지 당하고 있다.

제도적 안전망도 부족하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형의 감면대상에 교제폭력 뿐만 아니라 스토킹도 빠져 있다.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제지하고 분리하는 과정에서 빗발치는 민원과 고소·고발을 현장 경찰관 개인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구조다.

교제폭력에 늘 수반되는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의사에 의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반의사불벌죄 규정은 피해자에게는 보복의 공포 속에서 합의를 강요당하는 덫이 된다. 현장 경찰관에게는 ‘피해자가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사건을 종결해야만 하는 사법적 장벽’이 되고 있다.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현장의 실상을 온전히 반영한 법적 근거 마련이다. 2016년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을 규율하기 위한 특례법안이 최초 발의됐지만 여전히 관련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 16개(2026년 6월 5일 기준) 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숙의가 이어지는 이 순간에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교제폭력의 공포를 감내하고 있다.

매일 전국에서 300여건의 교제폭력 112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교제폭력 입법은 국민 안전의 최전선 과제다. 현장의 경찰관들이 교제폭력 피해자의 곁에서 더 당당하고 강력하게 방패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제22대 하반기 국회가 적극적으로 응답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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