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 번도 흑역사 인정 안해"… 6·25 소년병의 마지막 소송

사회

뉴스1,

2026년 6월 25일, 오전 11:25

6.25참전소년병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하경환 변호사

"대한민국이 과거의 흑역사를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이 소송은 없었을 겁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소년병 장성곤 씨(93)와 박태승 씨(93), 고(故) 장병율·하명윤 씨의 법률대리인 하경환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4년 7월 9일 '소년병은 병역 의무가 없으나 한국 전쟁에 동원돼 생명권 침해, 육체적·정신적 피해, 학습권 박탈 등 사회적 피해를 본 사실이 확인된다'고 했다. 또 '국가가 소년병의 명예 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구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장 씨 등은 진실규명 결정에 기뻐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지만 국가의 미온적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사이에 한 명의 소년병이 세상을 떠났다.

결국 남은 소년병과 유족들은 법정으로 향했다. 이들은 지난 23일 대구지법에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진실화해위의 소년병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 이후 처음 제기되는 소송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하 변호사는 이 소송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고 했다.

하 변호사는 "정부는 1950년 이후로 단 한 번도 흑역사를 인정한 적이 없고, 사과한 적이 없다"면서 "1억 원은 상징적인 금액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 변호사가 소년병 어르신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이다. 소년병 전우회가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 여는 위령제에 참석했다. 당시에는 100명이 넘는 소년병과 유족들이 있었지만, 이 전우회는 5년 전 해체됐다. 소년병 어르신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전우회를 지탱할 동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 변호사는 이제는 고인이 된 장병율 씨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50년 8월, 만 15세였던 장 씨는 대구 동인동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갔다가 경찰차에 강제로 태워졌다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장 씨는 전쟁에 투입돼야 했고, 장 씨가 가져간 물지게만 우물가에 남겨졌다. 소년병의 시간도 물지게와 함께 사라졌다.

"국방부 장관을 만나면 내 물지게값 물어내라 칼끼다"라고 말하던 장 씨는 결국 국가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장 씨는 생전 하 변호사에게 "내가 물지게값 못 받고 죽으면, 하 변호사 니가 대신 물지게 값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 변호사는 이 소송을 "물지게값의 약속"이라고 했다.

하 변호사는 "소년병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복학하지 못했다. 나이가 스무살이 넘어 돌아와 학교에 가니 눈치를 줬기 때문"이라며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을 꺼리는 분위기에 취직도 잘되지 않아 어르신들은 평생을 어렵게 살았다"고 말했다.

중고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하 변호사는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소년병 어르신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하 변호사는 "부모가 되니 이 나이대 아이들이 전쟁에 끌려갔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열다섯, 열여섯 소년병은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됐고, 일부는 고인이 됐다.

국가는 6·25 전쟁 이후 약 60년간 소년병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다가 2008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받고 나서야 소년병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소년병은 재일학도의용군, 향토방위대 등 다른 보훈 대상과 달리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소년병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별도의 지원이나 예우도 없다.

하 변호사는 국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 하 변호사는 "어르신들은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와 과거의 과오 인정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남아계신 분들도 이제는 요양원에 있다"며 "대한민국의 영토는 영원하지만, 그분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이분들이 지킨 대한민국이 빨리 움직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2년 11월 하경환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소년병 어르신들. 왼쪽부터 박태승 씨, 고(故) 장병율 씨, 장성곤 씨, 하 변호사.(사진=하경환 변호사 제공)




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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